‘의료분쟁의 증가는 의사와 환자 관계를 왜곡시키고 방어진료를 가져온다. 사회적으로 이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울산의대 김장한(인문사회의학교실) 조교수와 서울의대 이윤성(법의학교실) 교수가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이 알아야 할 의료법과 가장 문제가 되는 의료분쟁 사례, 판례에 대한 해설을 담은 ‘의료와 법(출판사 E*PUBLIC)'을 출판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의료분쟁의 증가 원인이 의사와 환자 관계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거 의사와 환자 관계는 시혜자와 수혜자의 입장과 같은 수직적 관계였고,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에 기초해 환자의 병이 치료되기만 하면, 또는 치료에 실패하더라도 의사가 치료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라면 적법하다고 간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으로 환자의 자율성(autonomy)을 존중하게 되었고, 환자의 동의 없는 의료행위를 전단적 의료행위로 불법화했으며, 환자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져 의사가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의학지식이 재분배되면서 좀 더 수평적으로 변했다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이로 인해 법적으로는 설명의무위반을 원인으로 한 소송형태가 발달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저자들은 의료의 전문화와 의료기관의 대형화에 따라 의사와 환자는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료관계를 형성하게 됐고, 이 역시 의료분쟁이 증가하게 된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을 객관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의해 환자들은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중요하지 않게 간주한다는 자기 삶의 주변화(marginalization)를 경험하게 된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러한 인간적인 측면에서 소홀한 의료 상황은 의사의 충고에 반한 퇴원, 임종과 연장치료의 지속 여부와 같은 윤리적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저자들은 의료분쟁 증가가 방어적 진료를 가져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들은 “의학적으로 필요한지가 명확하지 않은 진단을 위해 검사나 치료를 택하게 되는 과잉진료를 하거나 의료사고의 가능성이 높은 시술이나 환자 자체를 기피해 전원시키는 진료기피형태가 나타나고, 이러한 방어적 진료경향은 의료비 상승의 원인이 되며,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데 방해요소가 된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소송의 증가는 손해배상비용과 이를 위한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의 증가로 이어지며, 의료분쟁에 휘말린 의료인 역시 불이익을 가져오게 된다고 피력했다.
저자들은 “의료사고로 인한 비용 지출이 증가하면서 병원은 의료사고의 발생이 높은 의료인 고용을 회피하게 되며,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료인에 대해 손해배상의 일부를 부담시키고자 하는 중소병원의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의료사고 발생이 많은 의료인에 대해 보험회사들이 배상책임보험료를 높게 책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자신의 연봉으로는 보험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의료와 법’은 총론에 이어 의료관계법률, 의료분쟁, 손해의 발생, 범죄의 성립, 법적 책임 성립을 위한 다른 요건들, 절차법상의 권리 의무, 의료법상의 권리 의무 및 제도, 각론 등 의료 전반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인 판례를 담아 의사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