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통치의 역사로 치부되고 있는 대한의원에 대한 시각은 일본의 기만정책을 인정하는 결과라는 역사학자의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사진, 인문대학장)는 6일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에서 열린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대한의원이 일본 통치의 성과라는 인식은 식민통치 당국이 선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태진 교수는 ‘인정(仁政)의 의술의 근대화’ 기조강연에서 “제중원과 광제원 그리고 대한의원 등으로 이어진 근대 한국 서양의술 수용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는 대한의원의 정체”라며 “지금까지 일본 통감부가 세운 침략정책의 산물이라는 이해는 대한의원 창설의 충분한 고찰을 거친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태진 교수는 “1907년 대한의원의 출현은 결코 통감부의 독자적 시책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조선왕조가 보인 의술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서양의술 수용 문제에 비교적 빠른 대응을 보여 제중원과 그 학당, 광제원과 학부 의학교, 육군병원 등 발전을 꾀하는 역사를 남겼다”며 서양의학 도입에 대한 조선왕조의 의지를 시사했다.
이 교수는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대한제국의 의료정책 성과를 해제하거나 저지하려 했다”며 “보호조약을 강제한 뒤 독립국의 국제적 요건으로 창설된 대한적십자병원의 의료기능을 축소하고 다변화된 의료기관을 하나로 통합해 통제를 편의성을 꾀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원의 역사와 관련, 이태진 교수는 “대한의원은 1910년 강제병합 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을 바꿔 일제에 의해 달성된 문명의 상징처럼 선전되어 왔다”고 전하고 “문제는, 대한의원의 역사를 부정하며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도 고종 시대 가해진 일제의 역사왜곡과 대한제국 근대화 노력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일제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라며 잘못된 해석이 빚어낸 역사적 아이러니를 강조했다.
이태진 교수는 “대한의원이나 중앙은행, 한성전기회사 등은 일제 통감부의 업적으로 둔갑해 역사왜곡의 실체로 남게 됐다”며 “대한의원의 존재를 일제의 식민통치 산물로 간부해 대한제국의 역사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기만정책을 인정하는 결과”라고 말해 대한의원에 내재된 조선 왕실의 정신을 역설했다.
한편, 세브란스병원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광혜원·제중원 122주년 기념’ 행사 홍보를 위해 모든 의학전문지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는 등 서울대병원과의 혈통논쟁에 대한 막판굳히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