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직역단체들이 주도했던 의료법 반대투쟁의 흐름이 시민단체로 넘어가고 있다.
경실련, 건간세상네트워크 등 10개 시민단체들이 26일 정부 세종종합청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불법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한편으론 장동익 의협 회장 및 국회의원, 복지부관리 등을 고발한 것이다.
이들 단체가 로비의혹이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조금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의료연대회의'라는 연합체로 묶여있는데, 단체들이 많다보니 사안사안마다 반응이 느린 것이 그간 보여왔던 모습이었다.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모든 단체들의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회람이 돌고 그 결과를 받아 수정하고 하다보면 개별단체의 대응보다 적어도 하루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 이들 단체가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은 정부의 '의료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료연대회의, 로비의혹 기자회견 열어
의료법 전부 개정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활동은 그간 묻혀왔었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료직역들이 거세게 의료법전부개정안 반대 투쟁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원 동원력을 자랑하는 이들 직역단체들의 활동속에서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직역단체나 시민단체 모두 의료법 전부개정안은 반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반대하는 조항에 있어서는 달랐다. 시민단체들은 주로 의료산업화 조항에 문제를 삼고 있었고, 직역단체들은 유사의료행위, 의료행위 정의 등이 쟁점이었다.
그러나 '반대'라는 공통분모가 부각됐지 내용의 차별성은 드러나지 못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료법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면 사람들이 '의사 아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내부적으로 의료법 반대투쟁이 차별화되지 않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직역단체들은 "시민단체도 반대하는 의료법"이라고 했고, 시민단체 역시 '다르게 반대하는' 직역단체들의 힘에 기댄 측면도 없지 않았다.
시민단체 '의료법 반대' 주목 못받아
이런 와중에 터진 의협의 정관계 불법로비 의혹은 시민단체들이 고민해오던 차별성을 해소해 주었다.
로비의혹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의료단체 대신 시민단체가 반대투쟁의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 주부터 계획된 수요집회가 미뤄지는 등 범의료단체의 행보는 주춤거릴 수밖에 없게 됐다.
또한 의료법을 반대하는 강력한 논리도 얻었다.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이 의협 등 금품로비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규제개혁위원회에 넘긴 의료법 수정안에 의료계의 요구안이 대거 담긴 것도 이러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시민단체들이 금품 로비의혹이 장동익 회장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고질적인 정관계 로비의 산물이라며 몰아붙이며 검찰의 적극적 수사를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의도가 숨어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의료직역들의 목소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 시국을 이용해 의료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로비 의혹으로 국회가 의료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못내는 상황을 이용, 의료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서는 안된다"면서 "국무회의에서 부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