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비급여 약을 투여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투여했다. 나는 또 범죄자가 됐다”
성모병원의 모교수는 복지부의 과징금 처분 이후 의사들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식약청 허가사항 범위를 초과해 약제를 투여하는 등 관련규정을 위반해 170여억원의 행정처분을 앞둔 성모병원.
그러나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엄벌을 받은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오늘도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식약청 허가사항 외 투여를 중단하지 못하는 처지여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 교수는 얼마전 골수이식후 재발한 환자에게 항암제인 ‘마일로타그주’ 투여를 중단했다.
복지부가 성모병원에 대해 170억원에 달하는 환수 및 과징금 처분을 예고한 상황에서 더 이상 탈법적인(?) 방법으로 이 약제를 투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일로타그주’는 식약청 허가상 다른 세포독성화학요법제로 치료가 적절하지 않은 ‘60세 이상’ 환자에서 처음으로 재발한 CD33 양성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다.
하지만 그는 2년여 전부터 골수이식후 재발한 ‘소아환자’에게 ‘마일로타그주’와 항암치료를 병행해 왔는데 효과가 탁월했고, 학술대회에서 10여건의 치료사례를 모아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교수가 약제 투여를 중단하자 환자의 보호자는 소아도 비급여로 약제를 투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교수는 다음날 ‘마일로타그주’ 투여를 재개했다.
환자 보호자가 복지부에 민원을 넣은 게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입원환자인데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면서 “위법이냐 아니냐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가톨릭의 명예와 학문적 신념을 걸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다”면서 “위급한 환자를 앞에 두고 건강보험법에 위배되느냐를 따질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나는 정부에서 쓰지 말라는 약을 쓴 범죄자가 된 것”이라면서 “이렇게 따지면 몇 번 감옥에 갔다 왔어야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과자가 될 각오를 하고 약을 투여하고 있다”며 털어놨다.
그는 “이 약의 적응증을 확대해 달라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기각돼 이런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고의 전문가집단에서 약을 투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비전문가들이 못쓰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백혈병 재발환자는 공단 일산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모병원에서 백혈병을 치료하는 다른 교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또다른 교수는 “복지부로부터 엄청난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부터 대체수단이 있는 경우 허가사항 외 투여를 하지 않고 있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투여해야 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실사를 감수하고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청 허가사항 범위를 초과한 약제라 하더라도 비급여로 투여하게 해 달라는 백혈병 환자들의 애타는 요청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장 모씨는 최근 복지부 홈페이지 ‘장관과의 대화’에 백혈병에 걸려 성모병언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들이 ‘마일로타그주’를 투여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탄원했다.
장 씨는 “아들이 13개월째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다”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약을 사용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급여가 안되면 비급여라도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마이로타그주는 현재 비급여 약제이며 60세 이상에서 투여하도록 허가받은 약"이라면서 "60세 이하의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약제 허가사항을 초과해 사용하는 것이며, 임상논문 등 임상연구결과를 토대로 허가사항 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