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의 복지위 전체회의 통과가 무산됨에 따라 의료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의료계는 이번 법안처리 저지로 공식적으로 국회에 의견을 제기할 또 한번의 기회와 함께 대국회 설득작업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을 심의했다. 당초 수월하게 처리될 것으로 점쳐졌던 법안 심의는 예상치 못한 의원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격론으로 이어졌다.
특히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안명옥 의원은 법안소위 심의가 신중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면서 재심의를 요구했다.
안 의원은 "국민생활 전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소위에 2시간만에 심의했다는데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법안심사 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안이라도 절차의 정당성까지 훼손하면서 통과시킬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을 필두로 여러 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이견이 맞부딪혔다. 이에 복지위는 법안을 당장 통과시키는데는 무리가 있다는데 보고, 결국 법안을 소위로 회부해 재심의하기로 정했다.
의료계의 지속적인 설득작업...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편 이번 법안 처리 저지에는 의협 등 4개 범의료단체들의 노력이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료단체들은 법안의 소위통과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회에 의견서를 보내고 의원들을 일일이 방문해 설득작업을 벌여왔고, 법안소위와 전체회의 일정이 잡혀있는 11일에는 오전부터 회의장에 진을 치며 처리내용과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회의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의료계의 입장에 공감을 표했다는 점에서, 범의료단체들의 이 같은 설득작업은 나름의 소득을 거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의원들이 법안의 명칭을 시작으로 입증책임 전환으로 인한 부작용, 임의적 조정전치 주의 채택 등 법안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
먼저 박재완 의원은 입증책임 전환에 강력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입증책임을 의료인에 지우면, 의료인들이 어려운 수술은 회피하고 결국 환자가 장애(심각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게된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이는 결국 국민건강과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위안은 의료인에게 불리하고 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많이 와 있다"고 지적하면서 "입증책임을 적정하게 양측에 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전재희 의원은 임의적 조정전치 채택시 지나치게 의료소송이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오히려 행정절차 조정을 거쳐서 여기서 의료사고 여부가 가려진 후에 소송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면서 필요적 조정전치 주의 채택을 건의했다.
"의협, 매번 뒷북치기" 쓴소리...적극적인 의견개진 숙제
그러나 반성할 점도 많다. 의원들 사이에서 의협이 매번 뒤늦게 문제제기를 한다는 쓴소리도 흘러나왔기 때문.
이기우 의원은 "수차례 논의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매번 원칙론만 반복해왔다"면서 "왜 매번 나중에 와선 안된다고 아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강기정 의원도 "의료인들은 수차례 의견을 낼 과정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말이 없다가, 의결할 때가 되니까 나선다"면서 "직설적으로 말하면 의원들을 못살게 굴어서 의결이 안된점,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 의원은 "입증책임은 법안의 중심으로, 대안없이 이를 하지 말라고 하면 법을 만들지 말라는 말과 같다"면서 "의료계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법안의 처리를 미루기는 했지만, 복지위가 연내 법안처리를 공언한 만큼 이 같은 쓴소리들이 의료계의 약이 될 수 있다.
복지위 한 관계자는 "복지위가 오는 10월 12일로 상임위 의결 데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의료계는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