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이 백혈병환자들을 대상으로 골수검사를 하면서 건강보험이 인정되는 재사용 검사바늘 대신 전액 삭감 당할 게 뻔한 1회용 바늘을 9개월째 고집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복지부 실사에서 임의비급여가 적발돼 1백억원이 넘는 과징금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1회용 바늘을 고수하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건강보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성모병원의 6개월치 진료분에 대해 실사에 착수해 28억원 환수 및 141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당시 성모병원이 임의비급여한 항목 가운데 대표적인 치료재료가 1회용 골수검사바늘이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골수검사비용은 3만 2천원. 여기에 사용되는 검사바늘은 골수검사비용에 포함돼 있으며, 재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성모병원은 골수검사를 하면서 재사용 바늘 대신 1회용 바늘을 사용해 왔다.
여기에다가 요양급여기준상 바늘값이 행위료에 포함돼 있어 환자에게 별도의 재료대를 받을 수 없지만 성모병원은 1회용 바늘 비용 5만5천원을 환자에게 부담토록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런 임의비급여 사태를 겪었지만 성모병원은 지금도 1회용 바늘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성모병원은 백혈병환우회가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실태를 폭로하고, 복지부가 실사를 벌인 직후부터 달라진 점이 있다.
과거처럼 1회용 바늘 구입비를 환자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올해 1월부터는 심평원에 심사를 청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1회용 바늘 비용 5만 5천원중 환자 본인부담금 10%인 5500원을 뺀 4만9500원을 심평원에 청구하고 있다는 게 성모병원의 설명이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30일 “뻔히 삭감될 것을 알면서 청구하고 있다”면서 “실제 9개월간 100% 삭감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성모병원은 휴일을 제외한 평일의 경우 하루에 20여건의 골수검사를 한다고 한다.
따라서 한달이면 1회용 바늘값만 약 2천여만원 삭감되고 1년치를 환산하면 2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환자가 진료비확인 민원을 제기하면 본인부담시킨 10%까지 토해내야 한다.
이렇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사용 바늘을 사용하지 않자 병원 내부에서조차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메디칼타임즈가 얼마 전 만난 혈액내과 모 교수는 “1회용 바늘을 사용하는 것은 에이즈 등의 감염을 예방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아무리 소독한다 하더라도 부주의로 인해 감염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재사용 바늘은 대못으로 찌르는 것과 같을 정도로 고통이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회용으로 바꾼 게 올바른 판단인데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옳지 않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이는 돈 문제가 아니라 의사의 윤리적인 판단”이라고 못 박았다.
과징금이 아니다 더 큰 처벌을 받더라도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는 게 의료진들의 생각이다.
최근 성모병원 모백혈병환자는 보험이 되는 골수검사바늘로 검사를 받는 게 너무 끔찍하다며 1회용 바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복지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반면 병원 일각에서는 의료진들이 1회용 바늘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불만도 적지 않다.
환자를 위해 1회용 바늘을 사용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141억원 과징금 처분에다 진료비 삭감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병원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재료대 한 푼 건지지 못하고 전액 삭감되면 어떻게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느냐는 한숨도 터져나오고 있다.
그래도 성모병원은 환자에게 재료비를 임의비급여하는 것보다 삭감되더라도 심평원에 심사청구하는 게 속 편하다는 반응이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다가 나중에 복지부 실사라도 받아서 환수당하고 5배 과징금 처분을 받는 것보다 삭감되는 게 훨씬 덜 손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