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무자년(戊子年)년입니다. 개인적으로 서울시의사회 회장 직을 맡아 숨 가쁘게 보낸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면 저로서는 무척이나 기대되던 2008년 새해입니다.
우리는 매년 새로운 해를 맞을 때마다 벅찬 가슴에 설레곤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만 정신을 쏟는 나머지 정작 어떠한 일을 계획하여 실행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손을 놓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잠시나마 시선을 과거로 돌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면, 뜻하지 않게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00년 전 이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 정확히 1907년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고종이 헤이그에 이준 열사 등을 밀사로 보낸 때가 이해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여의치 않아 실패하고 그 결과 고종은 이완용 등으로부터 퇴위를 강요받게 됩니다. 결국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황위에 오르게 되었지요. 1907년은 대한제국의 군대가 일본에 의하여 강제 해산된 해이기도 합니다. 한편 종교계에서도 1907년은 대단히 의미 깊은 해였습니다. 개신교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회'를 개최한 해였던 것이죠. 이로 인하여 개신교의 교세가 굉장히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를 기념하여 ‘Again 1907'이라는 모토 아래 여러 행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숭례문에 대한 일본의 원형훼손 또한 이때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를 다시 복구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얼마 전 일제의 잔재를 온전히 벗기 위해 해체에 들어간 광화문 복원 사업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행해지는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1907년은 우리 의료계에 있어 상징적인 해였습니다. ‘대한의원’이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지시로 설립된 해가 바로 이때이기 때문입니다.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대한의원’이 조선인의 손이 아닌 조선통감의 지시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그 명칭에 ‘大韓’이 붙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실제로 대한의원의 초대 원장은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이었습니다.
그리고 1909년에는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이 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의원’이 한국의 근대의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겠지만, 이를 기억하고 그 현재적 의의를 밝힘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가올 10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이유가 보건의료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로 어느 직역의 이익을 떠나 100년 대계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았으나 금년에도 수없이 많은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료법 개정, 성분명 처방제도 도입, 의료피해구제법안 등의 악법으로 의료인들은 오랜기간동안 고통받아 왔습니다.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는 약사들과의 분쟁과 한의사들과의 영역다툼, 간호사법을 관철시키려는 간호사들과의 힘든 싸움 역시 그러했습니다. 의사회의 주된 임무는 ‘학술진흥’과 ‘회원의 권익보호’이기에 이를 위해 로비단체로서의 특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조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의료 관련 단체 중 가장 약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간호조무사단체’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서울시의사회는 더욱 적극적으로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겸허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최소한의 의권마저도 소실된 작금의 현실에 피가 끓지 않는 회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하나씩 이 난제들을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물심양면의 지원만이 우리 의사회의 앞길을 밝혀 줄 빛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여러분!
새로운 한해와 더불어 새로운 정부 또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의약분업 재평가와 개악 의료법 개정안 추진, 그리고 일방적인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추진 등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대대적으로 재평가하여 획일적인 의료사회주의를 걷어내고 선진 의료제도를 확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 여러분께서도 새해의 바램이 저와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 올바른 의료정책 확립을 위해 앞장섭시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들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2007년이라는 시간 또한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또 다시 100년의 세월이 흘러 2108년 우리의 후배 의료인들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될 때, 그들의 미래를 밝혀줄 현자(賢者)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한 해를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