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이 근거도 없이 의료기관에 의료급여환자 진료비를 환급해주라고 요구하다 법정 분쟁으로 비화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일부 대학병원은 실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진료비를 환급해 준 것으로 확인돼 심평원의 재량권 남용 행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메디칼타임즈가 25일 보도한 바와 같이 서울행정법원은 이날 가톨릭대 성모병원이 심평원을 상대로 제기한 ‘과다본인부담금 확인 및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사건의 내막을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의료급여환자 L씨가 2006년 사망하자 그의 유가족은 L씨의 본인부담금이 과다청구됐다며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 민원을 냈다.
그러자 심평원은 2007년 2월 15일 성모병원에 대해 L씨에게 과다청구한 진료비를 환급해 주라고 통보했다.
문제는 당시 심평원이 의료기관에 의료급여환자의 진료비를 환급해주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의료급여법 11조 3에 따르면 의료급여환자도 심평원에 본인부담금이 제대로 청구됐는지 여부를 확인 요청할 수 있으며, 심평원은 과다 청구된 진료비가 있으면 의료기관에 반환을 요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2007년 3월 28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것이어서 심평원이 2월 15일 성모병원에 진료비를 환불하라고 요구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였다.
이와 함께 성모병원은 심평원이 진료비 환불 통보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의료급여법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자 진료비 환불 통지 자체를 행정처분으로 판단, 과다본인부담금확인 및 환불통보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다 심평원은 의료급여환자 진료비를 돌려주지 않으면 실사를 받을 수 있다는 엄포까지 놨다.
심평원은 의료기관에 보낸 과다본인부담금 환불 통보서 서한에서 ‘심평원의 처분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으며, 복지부의 요양기관 현지조사지침에 따라 대상기관 선정시 이 건이 포함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린다’고 겁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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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현 의료급여법에 과다징수 진료비 반환의무 등이 규정돼 있지만 이 사건이 적용된 구 의료급여법에는 이와 같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또 법원은 “심평원의 진료비 환불 통보는 ‘처분’이 아니라 사실상 통지행위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 소는 행정처분이 아닌 행위를 대상으로 한 항고소송으로 부적절하다”고 판결했다.
심평원이 단순한 통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처분이나 실사니 하는 용어를 남발한 결과 행정소송으로 비화된 것이다.
성모병원은 서울행정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린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심평원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27일 “법원은 심평원의 진료비 반환 통보가 처분도 아니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심평원은 심사권을 남용했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고, 아무 죄 없는 의료기관만 이중, 삼중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평원 관계자는 “처분이라는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처분이 아니라 통보를 한 것인데 성모병원은 이를 처분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모병원은 심평원으로부터 이와 유사한 진료비 환불 통보를 100건 이상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대응키로 하고 진료비 지급을 보류한 상태다.
반면 메디칼타임즈 취재 결과 일부 대형병원은 심평원이 지난해 3월 28일 이전에 의료급여환자의 진료비를 환불해 주라고 통보하자 이에 따랐다.
몇 푼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진료비를 환불해 주지 않다가 실사라고 당하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