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의사’라고 하면 출시된 제품을 홍보하는 단순 업무로 이해하는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제약의사의 업무는 단순한 학술과 홍보 뿐 아니라 신약개발부터 제품구매를 위한 비니지스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펼쳐져 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등 10년의 생활을 거친 많은 의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걸맞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는 형국이다. 제약의학회(회장 이일섭, GSK 부사장)의 협조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약 10회에 걸쳐 학술과 마케팅, 제품개발, 약가 등에서 자신의 꿈을 일궈나가는 제약의사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여의사들이 육아 문제로 제약계 진출을 원한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가족들과 함께 보낸 주말과 저녁시간이 언제인지 잊어버렸네요.”
제약의사 사이에서 맏언니이며 큰누님으로 통하는 애보트 지동현 전무(49, 고려의대 84년졸)는 13년간의 제약계 생활에서 느낀 점을 이같이 피력했다.
지동현 전무는 고려의대를 나와 소아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국립의료원과 성남중앙병원 등의 봉직의를 거쳐 1996년 바이엘로 제약계에 첫 입사 후 파마시아(현 화이자)에 이어 2003년 애보트로 자리를 옮겼다.
지 전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신규사업개발부 및 메디칼부 총 책임자로서 순환기와 호흡기, 류마티스 등 신약·개량신약 라이센스 계약 및 시장·재무 분석 그리고 학술 업무 등 애보트 파이프라인의 다방면을 총괄하고 있다.
지동현 전무는 “결혼 후 봉직의 생활을 하면서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게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라면서 “진료실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고민 중 이혜란 선배님(강동성심병원 소아과 교수)의 조언으로 제약의 길에 들어서게 됐죠”라며 인생좌표를 옮긴 계기를 설명했다.
지 전무는 “제약에 들어와 느낀 점은 원칙과 과학, 윤리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는 부분”이라고 전하고 “이는 기존에 알고 있는 제품 영업의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지식을 이용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의사의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말해 진료실이 아닌 현장에서 체험한 제약의 의미를 전달했다.
"수평적 조직생활과 협상력 낯설죠“
업체 입사 후 의과대학에서 접하지 못한 수평적 조직생활과 의약품의 특수성은 지동현 전무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제약조직에 근무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리더십과 허가제도, 계약 협상력, 기획력, 조직력 등 입니다”면서 “의대 6년간 배우지 못한 분야를 하나하나 터득해 간다는 것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신약 계약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업무의 특성상 의사의 전문성이 필요할 때가 적지 않다는게 그의 견해이다.
지동현 전무는 “의학교육을 통해 익힌 학문들이 벤처업체와 제약사와 제품개발 미팅 중 여실히 실력을 발휘하죠”라며 “국내 질환의 추세와 성장가능성을 단박에 파악하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노하우에는 전문지식이 뒤따라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제약에 진출한 신입 의사들에게 조급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 전무는 “몇 년 사이 많은 후배의사들이 제약업체에 입사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밥값을 하고 있나’라는 식의 성패에 조바심이 있다는 점”이면서 “진료는 의사 한명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제약은 개인이 아닌 팀 업무인 만큼 상호간의 협조와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피하다”며 제약의 특성에 기인한 안목을 조언했다.
그는 이어 “외자사에 근무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설득력에 있어 한국인이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죠”라며 “외국인들은 오너에게 측정 가능한 성장력을 보여주는 기법이 탁월하나 우리는 표현력보다 스스로의 자부심이 강합니다”라고 설득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례로, 병원은 의사 개인의 진료실적을 중요시하는 개면 평가 중심이나 제약사는 여러 직역이 팀을 이뤄 전체를 평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지동현 전무는 “후배의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정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피력하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선후배를 만나 조언을 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죠”라며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을 것을 충고했다.
#i3#“여의사 육아 문제 해결책 아니다”
지 전무는 특히 “많은 여의사들이 육아 문제 등으로 제약사에 뛰어들었다가 오래 있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며 “의사니까, 병원과 다르니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들어오면 육아도 그렇고 업무적 스트레스도 그렇고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제약계에서 의사는 하나의 전문적 직함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MD 이름 하나로 제약계에서 성공할 수 없어요”라고 전제하고 “업체 내부에서도 의사가 아니더라도 유수대학과 MBA를 이수한 고급인력이 배치되어 있어 동료들과 경쟁도 만만치 않습니다”라며 면허증을 탈피한 도전을 주문했다.
지동현 전무는 “얼마전부터 다국가임상이 크게 증가했는데 여기에는 한국 임상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한 제약의사들이 노력이 깃들여있죠”라며 “과거에는 업체에 입사하면 이사 명함을 달았지만 지금은 차장과 팀으로 의사의 업무가 세밀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언급해 영역을 넓히고 있는 제약의사들의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지 전무는 “의약품 영업을 위해 판매는 영업사원들이 하고 있지만 이에 필요한 컨텐츠는 의사들이 잡아주고 있다”면서 “마케팅과 영업, 재무 등 매출에 필요한 모든 업무의 컨설팅을 담당하면서 작전참모 역할을 한다고 봐야죠”라며 경영업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제품개발을 위한 비즈니스 여행 등 일 년의 절반 가까이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동현 전무는 중소병원을 운영 중인 부군과 자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진료실을 떠나 되찾은 새로운 활주로에서 도전과 변화를 즐기면서 또 다른 비상을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