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의사’라고 하면 출시된 제품을 홍보하는 단순 업무로 이해하는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제약의사의 업무는 단순한 학술과 홍보 뿐 아니라 신약개발부터 제품구매를 위한 비니지스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펼쳐져 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등 10년의 생활을 거친 많은 의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걸맞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는 형국이다. 제약의학회(회장 이일섭, GSK 부사장)의 협조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약 10회에 걸쳐 학술과 마케팅, 제품개발, 약가 등에서 자신의 꿈을 일궈나가는 제약의사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약계에 근무하는 90여명의 의사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인물이 화이자의 이동수 전무(47, 서울의대 90년졸)이다.
여기에는 제약의사 중 처음으로 제품 판매를 책임지는 마케팅 부서로 외도(?)를 감행한 부분과 치열한 전문의약품 경쟁에서 화이자를 선두자리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라는 평가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동수 전무는 서울의대를 나와 가정의학과 전문의 취득 후 1996년부터 98년까지 을지병원에서 근무 후 곧바로 화이자 학술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학술부로 시작한 그의 제약 생활은 2003년 의학담당 상무로 학술부 최고 자리에 오르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이 전무는 “개인적으로 매일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주 흥미로운 일은 아니더라구요. 선배의 조언으로 화이자에 입사해 임상을 책임지면서 든 아쉬움은 중요 결정이 마케팅이나 영업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메디칼에 치중한 학술부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 사업인 제약업체의 특성상 매출과 직결되는 부서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업체에서 커 갈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죠”라며 주저 없이 부서 이동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이동수 전무의 인생좌표에는 늘 ‘확률’이라는 도전과 모험정신이 배어있다.
"마케팅, 신약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과정“
이 전무는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병원 생활이 행복할지 모르나 이미 같은 일을 하는 수 천, 수 만 명의 의사 중 한 명에 불과하다"면서 ”이러한 고민 중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에 도전해 앞서 나갈 확률을 높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라고 언급했다.
그가 화이자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마케팅을 비롯하여 신제품개발, 전략기획, 사업개발 등 매출과 직결되는 모든 제품을 진두지휘하는 작전 사령관이다.
마케팅의 정의에 대한 질문에 이동수 전무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케팅에 근무하면서도 점점 더 어렵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전하고 “학술부서가 제품의 개발과 인허가 등 학문성을 대표한다면 마케팅은 의사와 환자에게 신약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과정”이라며 고수다운 겸손함을 표했다.
마케팅 책임자인 이동수 전무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세계적인 고위자과정으로 알려진 홍콩과학기술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친 상태이다.
이 전무는 “종합적 지식을 요구하는 마케팅의 특성상 제품의 차별화와 시장을 보는 세계적 전문가들의 안목을 배웠죠”라면서 “은행과 전자 등 다양한 직업군과 함께 재무 및 조직 관리 등 리더십을 배양한 좋은 기회였다”며 서울과 홍콩 사이에서 얻은 값진 결과를 소개했다.
#i3#“특권의식 아닌 개방적 사고 필요”
마케팅에서 의사직이 지닌 장점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동수 전무는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제약의사로 근무한다면 의사의 명함은 중요하지 않다”고 전제하고 “제약사에 근무하는 여러 직종 중 하나일 뿐이며 어떤 일을 하느냐와 얼마나 성과를 올리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라며 수평적 조직관계인 업체의 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사가 제약에 근무한다고 하면 의사와 업체간 연결고리라는 인식이 강하나 이는 일부분에 불과하죠”라며 “고객인 의사를 잘 이해하면서 제품의 적응증을 빠르게 파악한다는 특징은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전쟁인 마케팅 차원에서는 모두가 대등한 경쟁상대 일 뿐”이라고 피력했다.
제약계에 관심있는 후배들에게 그는 겉모습이 아닌 분명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전무는 “업체에서 해외여행 등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에 연연하지 말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라면서 “왜 제약사에 근무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치와 보람이 무엇인지 명확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며 거시적인 시각에서 자신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것을 주문했다.
이동수 전무는 이어 “단순히 약을 파는게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고 판매하면서 환자에게 돌아갈 이득을 큰 틀 차원에서 사고해야 한다”며 “현재의 병원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특권의식을 버리고 개방적 사고로 타인을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후배라면 누구와도 대화할 용이가 있다’는 소탈한 성격의 이동수 전무는 제약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외부평가에 고개를 숙이면서 내일을 향한 또 다른 확률의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