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는 방송 보도가 파문을 일으킨 바 있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식약청은 ADHD 치료제가 실제 오남용 되고 있는지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방송 보도만을 근거로 허가사항을 대폭 강화하면서 소아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진료비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이사장 영동세브란스병원 송동호 교수)는 지난해 11월 KBS 추적60분과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ADHD 오남용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17일 춘계학술대회 기간 이를 집중 조명했다.
학회는 추적60분 방송 직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과연 ADHD 치료제가 일반 청소년들의 학습증진 목적으로 오남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이날 결과를 발표했다.
학회는 한국갤럽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주요 6개 도시의 중고생을 둔 학부모 10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 결과 자녀 중 주의력/학습 문제군은 23%, 심각한 주의력/학습 문제군은 3.9%였다.
이중 주의력/학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지를 묻자 단 1.6%만이 그렇다고 답했고, ADHD 치료제를 복용한 경우는 전체의 0.39%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학회 홍보위원장인 가천의대 조인희 교수는 “심각한 주의력/학습 문제군, 즉 ADHD로 의심되는 청소년의 10%만이 ADHD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면서 “언론보도와 반대로 ADHD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청소년 상당수가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ADHD 치료제의 오남용이 문제가 아니라 홍보 미흡이나 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치료를 받아야 할 소아청소년들이 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반면 추적 60분 방송은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학회는 추적 60분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 4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ADHD 자녀를 둔 부모 중 방송을 본 학부모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방송보도 이후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변화에 대해 4.5%는 호전됐다, 70.4%는 차이가 없다고 답한 반면 22%는 대체로 악화됐고, 3%는 매우 심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방송과 언론 보도가 결과적으로 ADHD 자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고 묻자 매우 부정적 영향이 9.5%, 대체로 부정적 영향이 47.7%, 영향이 없었다가 24.1%, 대체로 긍정적 영향을 줬다가 18.1%로 나와 마음의 상처를 받은 학생이 더 많았다.
이날 춘계학술대회에 참가한 모개원의는 “방송 이후 진료를 받던 환자들의 내원율이 떨어지고, 환자 보호자들이 불안해하는가 하면 신환들이 줄었다”면서 “무엇보다 이 때문에 치료받고 있지 않는 환자들의 치료기회를 박탈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이날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추적60분 뿐만 아니라 식약청의 태도에 대해서도 포화를 퍼부었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관계자는 “추적60분에 이어 국정감사에서 ADHD 오남용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식약청에 정확한 실태조사를 공동으로 벌일 것을 제안했지만 묵묵부담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그러면서도 식약청은 지난 3월 일부 학원가에서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며 ADHD 치료제의 허가사항을 대폭 강화했다”면서 “정확한 실태 파악도 하지 않고 약이 오남용되고 있다고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식약청은 지난 국정감사 직후 각급 교육청에 ADHD 치료제 오남용에 주의하라는 협조요청문을 발송해 일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회람토록 하면서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조인희 교수는 “협조공문을 본 학부모 중에는 ADHD가 안전한 약이냐는 문의가 쇄도했고, 심지어 일선 교사들이 소아환자들에게 가급적 약을 복용하지 말라고 지도하기도 했다”면서 “일부 의사들이 이 약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처방했다면 문제가 있지만 일부의 오남용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못 박았다.
식약청이 ADHD의 허가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 역시 도마에 올랐다.
그는 “식약청이 오남용 실태조사도 없이 진단기준을 강화한 것은 결과적으로 보험적용을 받아야 할 소아청소년들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진료비 전액을 본인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해 환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