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ADHD) 치료제가 소위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해 수험생들에게 처방되고 있다는 방송 보도와 국정감사 지적 등의 여파로 실제 ADHD 소아청소년환자들이 치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경희의료원 반건호(소아정신과) 교수는 9일 “지난해 ADHD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해 처방되고 있다는 방송 보도 등이 나간 이후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예약을 철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반 교수는 “신환들도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지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그러자 반건호 교수는 경희의료원보 1월호에 ‘마약판매상 누명쓴 소아정신과’라는 칼럼을 게재하면서 지난해 ADHD 파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반 교수는 “얼마전 일부 방송과 정치인은 소아정신과 의사들이 ADHD 아동들에게 진단하고 처방한 것이 모두 잘못됐다고 했다”면서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은 ADHD 아이들이 먹는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해 팔리는 마약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 교수는 “열심히 치료받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마약 먹는 아이들로, 남편과 시부모 반대를 무릎 쓰고 병원 데리고 다니던 엄마들은 자식에게 마약 먹이는 몹쓸 부모로, 환자를 진료한 소아정신과 의사는 아이들에게 마약 파는 나쁜 사람이 됐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0월 모방송국 고발프로그램은 ADHD 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염산메칠페니데이트’ 제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일부 수험생 등에게 장기 처방되고 있다고 고발하면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ADHD 치료제가 성적 향상을 위해 처방되면서 보험급여 청구액이 지난 4년간 21배나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신경정신의학회, 소아청소년정신과의사회,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신경정신과의사회 등은 ADHD 치료제 오남용 의혹 제기를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반 교수는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맞는 엉뚱한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이 생길 수 있음을 항상 고려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여기에다 식약청이 지난해 국정감사 직후 각급 교육청에 ADHD 치료제 오남용에 주의하라는 협조요청문을 발송해 일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회람토록 하면서 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이 협조요청문은 “ADHD 치료제는 꼭 필요한 환자에게 의사의 처방과 세심한 관찰 등에 의해 정확하게 사용돼야 하며, 수험생 등에게 공부 잘하는 약으로 복용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이 ‘염산메칠페니데이트’가 위험한 약이라고 학생들에게 잘못 전달하면서 환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정신과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조인희(길병원 정신과교수) 홍보위원장은 “일부 교사들이 ADHD 치료제는 위험한 약이니까 복용하지 말라고 지도했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어떻게 이런 협조요청문을 내려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인희 교수는 “식약청에 협조요청문을 철회하라고 공식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 교수는 “초등학생의 ADHD 유병률이 높은데 환자들이 많이 줄었고, 예약까지 취소되고 있다”면서 “그간 학회에서 수년간 ADHD를 대국민 홍보한 결과 겨우 편견이 해소되고 있는데 방송보도 이후 한순간에 무너졌고, 정신과의사들의 위신도 땅에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