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위기의 요양병원, 위협받는 노인 건강권]
7월 1일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병원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요양병원이 급증하면서 과당경쟁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수가체계 개편에 이어 노인환자들이 요양시설로 옮겨갈 조짐까지 보이고 있지만 옥석이 가져지지 않으면서 공멸설까지 나온다. 요양병원의 운영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요양원만도 못한 요양병원…노인만 피해
(2편)생존 경쟁 내몰린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3편)전봇대 없는 요양병원, 불구경하는 복지부
(4편)옥석 가리고, 전달체계 바로잡아야 윈-윈
100여병상을 보유한 경북의 K요양병원. 이 병원 의사는 원장 1명뿐이다. 병원 관계자는 “요양병원은 치료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메디칼타임즈 기자가 야간 당직의사에 대해 묻자 “밤에는 병원에 계시지 않고, 호출하면 나오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약사도 없다. 원장 혼자 회진을 돌고, 당직도 서고, 조제까지 직접 한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4월말 현재 전국 612개 요양병원 가운데 의사가 1명에 지나지 않는 기관이 무려 136개에 달했다. 요양병원 5곳 중 1곳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이중 30여개 요양병원은 80병상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6개는 150병상 이상이다.
요양병원 상당수가 의료법 위반
의료법상 요양병원은 연평균 1일 입원환자 40명마다 1명을 확보해야 한다. 1일 평균 병상 가동률을 50%로 계산하더라도 이들 요양병원 상당수는 의료법 위반이다.
의사가 2명 근무하는 235개 요양병원도 법적 인력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노인병원협회 박인수 회장은 “노인환자들은 한 두가지 의료적 서비스만 요구하는 게 아니어서 최소한 3명 이상의 전문의가 근무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요양시설로 전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올해 1월부터 요양병원들은 병상 대비 의사인력에 따라 수가가 차등 적용되고 있는데 5월말 현재 전체의 20%가 입원료가 감산되고 있다. 적정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 간호사를 갖추지 않고 있거나 아예 약사를 채용하지 않은 요양병원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서울의 L요양병원 관계자는 “약사가 없지만 의사가 직접 조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가 하기 때문에 투약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진입장벽 허술, 불법 양산
요양병원들이 법정 의료인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상 의료인 정원을 지키지 않더라도 시정명령이 고작이다.
최근 부산시가 요양병원 75곳을 점검한 결과 31곳에서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이중 2개 병원은 입원환자 대비 의료인 정원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 의료기관은 시정명령을 받는데 그쳤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의료인 정원을 갖추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고발 조치도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일부 요양병원들은 의사의 면허를 대여해 개설신고를 하고 있다는 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닐 정도로 편법이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실제 심평원이 현지조사를 한 결과 이런 면허 대여 기관들이 적지 않았다.
요양병원 진입장벽이 허술할 뿐만 아니라 버젓이 관련법을 위반하고 있어도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고, 걸려봐야 별다른 제재가 없어 정부가 부실병원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올해부터 요양병원에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서 적정 인력을 갖추지 않고, 노인들에게 과소의료를 제공하는 부실 요양기관들은 이익을 보는 반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오히려 손해가 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인수 회장은 “시설과 인력, 서비스 체계,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기준을 충족한 병원에 한해 요양병원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요양병원 진입장벽을 손질하지 않은 채 7~9월 진료분을 대상으로 적정성평가를 시행할 계획이다.
적정성평가는 임상 질(과정 및 결과)과 현황(시설, 인력, 장비) 부문에서 30여개 지표가 적용되며, 평가결과가 공개된다.
문제는 적정성평가 지표 상당수가 의료법 시행규칙상 ‘의료기관 종류별 인력, 시설 기준’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물리치료실은 요양병원에서 필수적이지만 의료법만 놓고 보면 갖추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요양병원 적정성평가 지표에는 포함돼 있다.
방사선촬영실, 임상검사실, 당직의사, 물리치료사 1인당 병상수,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병상당 병실의 평균 면적, 의사 1인당 병상수 등의 평가 잣대도 모두 의료법 기준에는 없는 사례들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잣대로 요양병원을 평가한 후 공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요양병원 원장은 “정부가 요양병원의 인력, 시설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사후관리를 철저히 했으면 요양병원계가 불법의 온상으로 비춰지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제도를 재정비한 후 적정성평가를 실시해 우수 기관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인력과 시설 기준을 엉성하게 만들어놓고 적정성평가를 통해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하는 것은 협박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