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위기의 요양병원, 위협받는 노인 건강권|
1일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병원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요양병원이 급증하면서 과당경쟁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수가체계 개편에 이어 노인환자들이 요양시설로 옮겨갈 조짐까지 보이고 있지만 옥석이 가져지지 않으면서 공멸설까지 나온다. 요양병원의 운영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요양원만도 못한 요양병원…노인만 봉
(2편)생존 경쟁 내몰린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3편)전봇대 없는 요양병원, 불구경하는 복지부
(4편)옥석 가리고, 전달체계 바로잡아야 윈-윈
지방에 위치한 Y요양병원. 100병상이 넘는 병원이지만 의사는 단 한명이다. P요양병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70여명이 입원해 있지만 의사는 원장이 전부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요양병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지만 결국 이것이 우리나라 노인의료의 현주소인 것.
사정이 이렇다보니 청와대 최희주 선임행정관은 얼마전 심포지엄에서 "솔직히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이 뭐가 다른지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고까지 표현했다.
'나홀로 진료' 태반···"시설로 전환해야"
1일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4월말 현재 Y요양병원과 같이 상근 의사가 1명인 요양병원은 136개에 달한다.
전국에 설립된 623개의 요양병원 중 20%가 넘는 병원이 나홀로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법상 연평균 1일 입원환자 40명을 기준으로 의사 1인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이를 위반하고 있는 셈.
용인효자병원 한일우 원장은 "의료기관 개설 신고를 할 때 서류상으로만 의사수를 맞춰놓고 실제로는 근무하지 않는 의사가 많다는 얘기 아니겠냐"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한강성심병원 윤종률(가정의학과) 교수도 "의사 혼자 80~100명씩 진료하는 병원이 부지기수"라며 "이들을 조속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요양병원은 당직 시스템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P요양병원 관계자는 "당초에는 의사 2명이 교대로 당직을 섰지만 현재는 혼자 당직을 서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정식으로 당직근무를 하지는 않고 호출이 오면 나간다"고 털어놨다.
Y요양병원은 "근무 의사가 병원 근처에 살고 있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의사 혼자 진료와 당직을 병행한다는 것인데 환자 관리가 제대로 될 지 의문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의 의료 인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비난이 높다.
의사 혼자 진료와 당직을 도맡아 가며 운영되는 병원이 과연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피해는 이같은 상황을 모르는 채 병원만 믿고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노인병원협회 박인수 회장은 "요양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다양한 의료서비스와 요양·보호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며 "의사 혼자 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요양병원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문의가 3명 이상 근무해야 한다”면서 "경영상의 문제 등으로 의료진을 보충할 수 없다면 요양시설로 전환하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시설보다 못한 요양병원 수두룩···방치되는 노인들
의사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요양병원이 약사나 간호사는 적정하게 배치하고 있을까.
노인병원협회에 따르면 5월 현재 전국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약사는 불과 200여명.
결국 단순식으로만 계산해도 병원 3곳 중 한곳 정도만 약사를 고용하고 있다.
특히 대다수 요양병원들이 1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사를 고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100여병상을 갖추고 있지만 약사가 없는 S요양병원 측의 반응은 황당하다.
기자가 약은 누가 조제하느냐고 묻자 "원장님이 하고, 가끔은 간호사도 조제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간호사 조제행위는 명백한 약사법 위반이지만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근무약사가 없는 다른 요양병원들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요양병원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간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심평원이 분석한 간호등급 현황을 보면 요양병원 623개소 중 기준 등급인 5등급 이상은 75.9%에 불과하다.
24.1%의 요양병원들은 기준에도 못미치는 간호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윤종률 교수는 "지금까지 의사 한명 없이도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예가 많았다"며 "하지만 정부도, 심평원도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들 요양병원도 할 말은 있다. 인적 인프라가 많은 서울과 달리 지방 요양병원들을 인력 채용이 힘들다는 것이다.
P요양병원 관계자는 "지방 요양병원의 경우 교통 등이 좋지 않아 의사들이 근무를 꺼리고 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연봉 등의 조정이 필요하지만 열악한 병원 환경상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병원간 시설·인력 격차 심화···"대책마련 시급"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요양병원이 모두 이처럼 열악한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환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병원들도 적지 않다.
서울의 참요양병원(원장 박선태)이 대표적인 경우. 총 230병상으로 운영되는 이 병원에는 상근중인 의사만 10여명에 이른다.
영양사 4명, 조리사 5명을 포함한 전체 직원수는 135명. 야간 당직의사와 간호인력을 배치함은 물론, 1:1 간병서비스를 통해 보호자 없는 병동을 운영하고 있어 환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용인효자병원과 보바스 기념병원 등도 모범적인 요양병원으로 꼽힌다.
총 110여명 정도의 인력이 근무중인 효자병원(원장 한일우)의 경우 신경과와 정신과, 내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물론,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병원의 사회복지사들과 자체적인 병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바스 기념병원(원장 손성곤) 역시 재활전문요양병원이라는 역할에 맞게 물리치료사만 120명에 달한다. 이 인력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갖가지 치료 프로그램 등은 보바스 병원만의 특색으로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양병원들조차 부실한 요양병원의 그늘에 가려 함께 매도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관리가 허술해져 병원간 격차가 너무 벌어지자 환자들 또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참요양병원 김선태 원장은 "서울의 어떤 급성기 병원과 비교해도 시설과 인력이 양호하지만 일부 부실 요양병원으로 인해 도매급 취급받을 때는 억울하다"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에 따라 병원각 격차를 최소화하고 요양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윤종률 교수는 "현재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잘하면 수가를 더 주고 잘못하면 깎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가감 차이가 미미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인력을 충분히 갖추면 그에 마땅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며 "이러한 상벌체계가 확립되지 않으면 부실한 운영을 막을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노인병원협회 박인수 회장은 "우수한 요양병원에 특혜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질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병원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이는 노인들의 건강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