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임의비급여 합법화 한 달|
보건복지가족부가 의학적 임의비급여 양성화조치를 시행한지 한 달이 지났다. 임의비급여는 성모병원 임의비급여사건이 터지면서 병원계의 핵심쟁점으로 급부상했고, 복지부도 이를 수용해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된 임의비급여약제에 대해서는 합법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임의비급여 합법화에 대한 병원계의 반응과 개선방안을 심층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임의비급여 양성화 기대할 게 없다”
(하)성모병원사태는 현재형…개선책 시급
보건복지가족부가 8월부터 허가사항을 초과한 약제라 하더라도 의료기관이 의학적 타당성을 입증하면 합법적으로 비급여 투여를 허용키로 했지만 병원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A대학병원 교수는 1일 “정부가 허가초과 약제라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투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임의비급여를 양성화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는 겉으로는 합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예 이런 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봉쇄하겠다는 의도”라면서 “혈액질환은 환자군이 많지 않고 질환 특성상 임상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요건을 충족하기가 어렵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B대학병원 관계자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허가사항을 초과한 의약품 가운데 일부는 임상에서 투여한 결과 효과가 좋다는 게 어느 정도 입증됐지만 임의비급여를 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심평원에 의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전 세계 의학논문을 다 뒤져봐도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복지부가 요구한 의학적 근거의 범위는 교과서, 국내·외 임상진료지침, 공인된 학술지에 게재된 임상연구 문헌, 제외국의 약제 허가사항 등이지만 병원계는 잣대가 과도하게 엄격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임의비급여 더 음성화 우려"
특히 임의비급여 합법화 대상 약제에서 항암제가 제외된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임의비급여 대부분이 항암제인데 합법적 비급여 투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임의비급여가 허가사항 초과 약제 이외에도 허가사항 초과 치료재료, 요양급여기준 위반, 진료수가에 이미 포함된 약제·검사·치료재료 비용의 별도징수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데 정부가 후속대책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임의비급여 개선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들 항목별 해결방안까지 제시했지만 허가사항 초과 약제 이외에는 후속대책 시행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C대학병원 측은 “임의비급여 문제로 인해 병원들이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조속히 개선해야 하는데 정부가 계속 늑장행정을 펴고 있어 개선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관들은 임의비급여를 합법적으로 사용하는데 한계를 느끼면 다시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더욱 음성화될 우려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외에도 병원들은 임의비급여를 합법적으로 투여하기 위해 심평원에 제출할 서류가 너무 방만하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8월부터 허가사항 초과 약제를 합법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달간 심평원에 단 2건의 비급여 승인 신청이 접수되자 병원들도 그간 안일하게 임의비급여를 해 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앞서 언급한 B대학병원과 같이 과거 임의비급여하던 약을 합법적으로 투여하고 싶어도 의학적 타당성을 입증할 임상논문이 없다면 그간 임의비급여를 남용해 왔다고 볼 수밖에 없고, 환자들은 임상시험 대상이 된 셈이기 때문이다.
서울의대 신희영(소아과학교실) 교수도 임의비급여와 관련, 임상의사들의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혈액학회 창립 50주년 종합학술대회에서 “사회가 발전하면서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야만 지원이 되는 상황이 더 심해질 것이므로 의료계도 이러한 증거를 만드는데 더욱 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와 함께 그는 “경험적으로 사용되던 약물과 치료도 이제는 증거를 만들어야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면서 “대상 환자 수가 적어 임상적인 의미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여러 병원들이 모이고 학회가 참여해 증거를 만드는 것이 점점 나빠지는 의료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