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혈액형으로 수혈을 받지 못해 생명이 위급하던 환자가 미군 병사의 헌혈로 새 삶을 살게 된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박 모(여․21) 씨. 박 씨는 지난 10월 초 전북대병원에서 골수이식수술을 받게 됐다. 골수이식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박 씨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하지만 혈액암 환자들의 경우 골수이식이 끝난 뒤에도 안심할 수 없다.
골수이식 후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줄어드는 범혈구감소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면밀한 관찰과 적절한 수혈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 씨에게도 지난 8일 큰 위기가 닥쳤다. 박 씨의 혈소판이 급격히 감소해 정상치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온 것. 이러한 상황에서는 출혈에 의한 합병증이 발생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 씨는 국내에서 가장 희귀한 혈액형 가운데 하나라는 Rh-AB형의 혈액을 지니고 있었다. AB형 혈액형은 전 국민의 10~15%에 불과한 데다, Rh-형의 혈액을 가진 사람은 0.1~0.3%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박 씨를 살리기 위해 전북대병원 종양혈액내과 담당 교수인 곽재용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과 신장내과 박성광 교수 등이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운 좋게도 군산에 위치한 미군 부대에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미8전투 비행사단 병사 가운데 RH-AB형 혈액을 가진 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8전투비행사단병원에서 알려온 것.
사단 측과 해당 혈액형을 가진 포프 타마리어스 하사(20․Pope Tamarias)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흔쾌히 헌혈을 해 주기로 해 의료진의 한숨을 돌리게 했다. 포프 하사와 병원 관계자들은 8일 2시 군산 비행장에서 전북대병원까지 달려와 헌혈을 했고, 각종 검사가 실시된 뒤 자정께 박 씨에게 수혈이 이뤄졌다.
포프 하사의 인류애 실천으로 한 고비를 넘긴 박 씨에게 이후에도 많은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군 응급환자 지원센터를 통해 목포, 광주, 경남 산청 지역 장병들이 헌혈을 했고, RH-혈액형 봉사회와 일반 시민들의 사랑의 손길도 전해졌다. 박 씨는 현재 혈액 수치가 정상치에 근접했고, 주말 정도 퇴원도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포프 하사는 “내 혈액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주저 없이 헌혈을 결정했다”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인연을 맺게 됐는데, 이런 뜻 깊은 일까지 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