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종사자들이 폭행, 질병, 사고 등 다른 업종에 못지 않는 위험요인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산업보건적인 대비는 매우 미비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동국의대 예방의학교실 이 관 교수팀은 대한산업의학회지 15권 4호에 실린 '일부 병원급 의료기관의 산업안전 보건활동 실태' 연구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재해 발생율은 100인당 10.3건으로 재해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트럭운송업의 14.8건, 여관의 10.0건, 잡화업 10.8건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병원 종사자이 노출된 대표적 위험요인은 열, 소음, 방사선, 독성화학물질, 생물학적 인자, 인간공학적 인자, 폭력, 스트레스 등이었으며 일반적으로 종사자의 80% 이상이 이같은 위험 요인에 1~2가지 이상 노출돼 있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상 질병은 감염성 질환, 뇌심혈관 질환, 근육골격계 질환 등이 가장 흔하게 나타났다.
가령 최근 산업안전공단의 보고에 따르면 한 외과 전공의가 수술중에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전격성 감염으로 사망한 사례나 장기간 항암제를 취급한 간호사에게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발생한 사건 등이 해당된다.
이밖에도 간호사가 청소업무를 하는 도중 접촉 피부염이나 급성기관지염이 발발하는 등 결핵, 바이러스성 간염, 급성기관지염, 접촉피부염 등에 걸린 사례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위험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의 산업재해에 대한 대비은 다른 업종에 비해 턱없이 미비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492개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업안전 보건실태에 관한 조사에서 96% 이상인 473개소가 안전보건자료 미비치, 특수 건강진단 미실시, 안전보건교육의 미실시, 작업환경 측정 미실시 등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또 이번 연구에서 전국 100개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산업의학과가 사업장내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2%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총무과나 시설과 등에서 산업안전 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35%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으며 22%가 감염관리위원회를, 48%가 방사선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법적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된 65개 의료기관 중에서도 14.8%인 9개소는 이를 어기고 있었다.
이밖에도 유해 부서에 대한 특수건강진단과 작업환경측정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50% 안팎이었으며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한 곳도 67%에 그쳤다.
연구 보고서는 "병원급의 산업전보건은 관계자들에게도 생소한 분야여서 담당 부서를 정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총무과와 원무과 등은 행정부서이기 때문에 안전보건 업무는 주로 법적 허가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뤄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에서 이 교수는 "지금까지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이 분야에서 전문가이므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환경산업안전보건부나 혹은 산업안전보건과 등을 신설할 필요성이 있으며, 미국의 ‘병원 종사자들의 산업안전 보건을 위한 지침’처럼 우리도 의료기관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지침서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