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의 소재로 활용되어 온 ‘수술 중 각성(intraoperative awareness)’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의학과 물리학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열렸다.
서울아산병원 노규정 교수팀(임상약리학과) 포스텍 김승환 교수팀, 이운철 미국 미시건 의대 연구원(포스텍 박사) 공동연구팀이 마취를 통한 의식의 소실과 회복 메커니즘을 뇌파 분석을 통해 정량적으로 처음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권위있는 국제학술지인 ‘의식과 인지(Consciousness and Cognition)’ 온라인 판을 통해 발표했다.
한-미 공동연구팀은 정맥 마취제인 프로포폴(propofol)을 14명의 수술 예정 환자에게 주사한 뒤 의식상태와 마취상태의 뇌 활동을 뇌파로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비선형 동역학적 방법을 이용해 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 결과 신체가 마취되면 의식에서 무의식 상태로 전이하면서 신경계가 가지고 있는 정보통합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하며, 의식의 소실은 뇌파의 시간적ㆍ공간적 자기조직화가 깨지면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이 때 인지를 다루는 전두엽에서 감각을 다루는 후두엽으로 흘러가는 정보가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결과는 뇌를 이루는 신경계의 정보 통합이 일반 마취에 의해 바뀐다는 인지 통합적 패러다임의 직접적인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오래전부터 철학, 과학, 의학적 관점에서 관심을 가져온 문제였으나,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은 분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마취심도 혹은 수면심도를 측정할 수 있는 뇌파 장비가 몇 종류 개발된 것은 있으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해 이러한 장비에 도입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술 중 각성’ 사고도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이처럼 베일에 가려져있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정량적인 기준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과 국내에서도 의학적 임상시험과 물리학적 분석을 통한 학제 간 공동 작업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미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를 통해 마취제나 진정제의 효과를 파악하고 표준화할 수 있어 수술 중 각성 등의 의료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또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무의식과 무의식을 정확하게 판별해줄 수 있는 ‘대리표지자(surrogate biomarker)’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