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외래환자 진료비 본인부담 정률제를 사실상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극적인 반대에서 ‘선시행 후개선’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새 의료급여제도의 경우도 기존 방침대로 철회투쟁을 끝까지 결행한다고는 했지만 ‘일부 의료급여환자의 비중이 높아 현실적으로 의원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회원들에 한해 지역의사회의 동의하에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전면거부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의사협회의 정률제와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이 같은 조치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법률로서 확정한 제도를 단기적이고 물리적인 방법만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인식에 따라 취해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새 의료급여제도는 의사협회의 전면거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개원가에서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정률제도 이미 국무회의를 의결을 거쳐 공포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결국 새 집행부가 정부와의 첫 싸움에서 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강력한 집행부를 갈망하는 회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뒤 가릴 틈 없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현실의 벽에 부닥쳐 날개가 꺾인 것이다. 무엇보다 말에 앞서 실천이 모자란 것은 집행부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집행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자기들 이익만 챙긴 회원들도 반성해야 한다.
다만 집행부가 이미 때를 놓쳤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부의 행보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특히 금품로비 사태 이후 의사협회가 수세에 있는 추세에서 정부 정책에 선제적으로 공세에 나섬으로써 향후 수가계약 등 중요한 상황에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성과도 많았다. 따라서 새 집행부는 이번 일을 거울삼아 어떻게 대정부 투쟁 전선을 구축할지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