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진료권 및 알권리 보장을 위해 의료기관 이용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와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의무를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는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보호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조 교수는 국내 현행법들이 국민들의 진료에 관한 6대 권리(진료받을 권리, 비밀보장권, 사생할보장권, 정보열람권, 설명받을 권리, 의료행위 동의권)를 적절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기본법이 국민의 권리 및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나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할 이행 수단이나 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며, 의료법에서 의료인 의료기관의 의무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 또한 자발적인 의무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그는 따라서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의무이행을 규정하는 별도의 법, (가칭)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보장법'을 제정해 이용자의 권리를 재규정하고 의료기관에서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 법률에 △확장된 의미의 의료기관 이용자 정의 △보다 광범위한 환자의 권리 규정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와 의료인, 의료기관의 책무 △위반시 강력한 처벌 규정 등을 담아낼 것을 제안했다.
조홍준 교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책임하에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구시대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용자과 공급자가 동등한 관계속에서 서비스를 요구하고 제공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그 체계가 집행될 수 있는 구조로 법을 완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조 교수는 환자 권리보호를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인권위 산하에 '(가칭)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연구원' 설립 △의료인 및 의료기관 처벌강화 및 처벌 방식 다양화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단체 육성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의료계 "의권보호는 뒷전…손발 다 묶고 수술하라는 건가"
이에 대해 환자단체는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는 "국내 의료 현실에서 보자면 의사와 시민단체, 정부 누구도 환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나서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단 시간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보장법 제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대한의사협회 안양수 기획이사는 "환자의 인권을 논하기에는 지금의 의료현실이 너무 절박하고 왜곡되어 있다"고 운을 뗐다.
박리다매와 초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현실속에서 정작 의사들의 권리는 외면당하고 있다는 서운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특히 그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 80%, 간호사 86%가 최근 1년간 폭력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안 이사는 "환자의 권리와 의료현실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정부"라면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불만이라면 현 의료체계가 잘못된 것이고, 결국 그것을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강조했다.
병협도 이에 의견을 같이 했다. 병협 서석완 기획조정실장은 건강정보보호법, 의료사고피해구제법 등 관련 법들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30년 건강보험으로 의사들의 손발을 다 묶더니, 이제 눈까지 가리고 수술하라는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복지부도 다소 유보적인 대답을 내놨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권기환 사무관은 "의료법에 일부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별도의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 먼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아울러 동법을 별도로 만들자면 이용자와 함께 공급자를 위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