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장을 맡은 후 원외처방이 사라지게 돼서 약국이 화났나 봅니다. 보건소에서 나와 처방약을 직접 조제했는지 조사하더니 결국에는 경찰로 넘기겠다고 하더군요.”
부산시 한 신경정신과 원장은 불과 두달전 인근 약국의 고발로 보건소의 현지조사를 받은 상황을 이같이 설명하면서 착찹했던 당시의 심정을 피력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정신질환 급여환자의 원내조제 의료급여법 적용 이후 정신과의원을 상대로 한 약국들의 고발이 산발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정신과 한 개원의는 “신경정신과의사회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원내조제를 이유로 인근약국으로부터 고발당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고 있다”면서 “급여환자의 원내처방 의무화 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약국에서 정신과의원을 고발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대부분 약국이 제기한 민원은 ‘약사법’ 위반이다.
현행 약사법 제23조(의약품 조제)에는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수 없다’(제1항)고 규정하고 있으나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직접조제 사항으로 ‘응급환자 및 정신분열증 또는 조울증 등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조제하는 경우’(제4항) 등을 예외규정으로 하고 있다.
겉으로는 약사법 규정에 큰 문제가 없은 듯하나 ‘의사의 직접조제’라는 부분이 고발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다시 말해, 장시간 상담과 진료를 요하는 정신과의 특성상 의사가 직접 약을 조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의 조제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보니 원내조제로 처방전 발행 감소에 따른 약국들의 불만이 해당의원 환자들의 귀동냥을 통해 직접조제 위반이라는 고발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의료급여법 제9조(정신질환 수가기준)에는 ‘정신질환 정액수가에는 투약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신과 전문의료급여기관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진료 후 치료약제는 직접 조제·투약하여야 한다’며 조제 주체를 ‘의료기관’으로 기술해 법 해석의 모호성을 유발하고 있다.
한 개원의는 “보건소 대부분이 의료급여법의 규정보다 약사법을 근거로 의사가 직접조제하지 않았다면 경찰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서 “정신과의사들 사이에서는 소송으로 가면 의사가 승소한다고 알고 있지만 고소건마다 소송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며 처방전 발행을 조건으로 약국 고발건을 마무리한 예를 설명했다.
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회장 이성주)도 회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의협을 통해 복지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정신과협의회와 의협은 2007년 10월 선고된 대법원 판례(2006도 4418판결)를 제시하면서 ‘의사의 지시에 따른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의 조제행위를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행위로 볼 수 있다’는 판시내용을 주목했으나 복지부의 답변은 애매했다.
의협의 재유권해석 요청에 대해 복지부는 지난주 대법원 판시내용을 그대로 기술하면서 “복지부의 답변내용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상충된다고 볼 수 없어 약사법 제23조 규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다시할 타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구체적 해석을 사실상 거부했다.
부산시 한 개원의는 “1일 30~40명 환자 중 대부분이 급여환자인데 어떻게 의사의 직접조제가 가능하겠느냐”면서 “회원들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넘어가고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 현실적이고 명확한 기준제시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고발건으로 이어지고 있는 정신과 의원들의 명확한 대책마련 차원에서 복지부에 다시 한번 유권해석을 요청한 상태이다.
이성주 회장은 “약국 고발의 이면에는 왜 처방전을 발행 않고 원내 조제로 약국수익을 감소시키느냐는 장사속이 담겨있다”고 전하고 “결국 처방전을 발행해 같이 살자는 약국의 자세에 타협하는 현 상황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