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을 공전했던 의료분쟁조정절차 법제화 작업이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한 의료법 개정과 맞물려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관련법안은 심재철 의원과 최영희 의원안 2건. 양 법안은 핵심쟁점인 입증책임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방법론을 택하고 있어, 향후 법안심의과정에서 치열한 논박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 새로운 청원안을 낸다는 계획이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편집자 주>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 이어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3일 법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의료사고피해구제 혹은 의료분쟁조정과 관련된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양 법안은 의료사고라는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고 있지만 '의료사고피해구제' '의료분쟁조정'이라는 법안의 명칭에서 보듯, 그 해법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시각차를 가지고 있다.
피해구제법 VS 분쟁조정법,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일단 양 법안의 가장 큰 차이는 의료사고 혹은 분쟁발생시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누가 지도록 할 것이냐는데 있다. 의료사고의 원인과 인과관계 분석을 의사 몫으로 넘길지, 현행 판례와 같이 의사와 환자가 나누어지도록 할지가 관건.
심재철 의원은 환자와 의사간 책임분배를 골자로, 의사가 의료사고 발생에 관해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할 경우 환자가 의료과실 행위 및 행위와 피해사이에 인과관계를 증명하도록 했다.
반면 최영희 의원은 입증책임의 완전전환을 표방해,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기관개설자 또는 의료인이 자신의 의료행위에 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게 했다.
아울러 소제기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심재철 의원안은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로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으나, 최영희 의원은 헌번상 재판청구권과 신속히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조정절차 없이 소제기가 가능한 임의적 조종전치주의를 택했다.
한편 형사처벌특례와 조정위원회설치,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등은 양 법안 모두 인정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각론에서 보면 차이가 있다.
형사처벌특례에 있어 심 의원안은 업무상 과실치상죄와 중과실 치상제를 포함해 종합보험 가입시 반의사불법을 택하도록 했지만, 최영희 의원은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대해서만 반의사불법을 적용하며, 무자격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 등 의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사유는 특례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조정위원회의 규모 또한 다르고,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대상을 정의하는데 있어서도 시각이 달랐다.
양 법안 모두 국회 제출절차가 마무리된 만큼, 향후 병합심의가 예고되고 있는 상황. 입증책임 전환을 중심으로 세부각론에 이르기까지 국회심의과정에서 치열한 논박이 예상된다.
"의료행위 과실 입증책임 의사가" VS "형평성 어긋나"
주지하다시피 입법과정에서 핵심논쟁은 의료행위 과실 입증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이냐에 있다. 실제 의료분쟁조정법(혹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16대, 17대 국회 등에서 입법화 작업이 진행되어 왔으나, 번번이 입증책임 전환 논란에 발목이 잡혀 주저앉았다.
이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의료계는 여전히 입증책임의 완전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환자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특성을 반영할 때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의사가 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 입법에 참여한 의원들도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심재철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 입증책임의 문제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점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해당 규정이 법조문에 포함될 경우 법안전체가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다각도로 고민했고, 현재로서는 입증책임을 분배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예고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양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입증책임 문제를 둘러싼 문제제기로 의료계 안팎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일단 의료계는 의료의 특성상 기존의 민법에 따라 소비자가 모든 입증책임할 경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의료인에게 그 책임을 전부 지울 경우 무분별한 소제기와 이로 인한 방어진료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
반면 시민단체는 입증책임의 완전한 전환만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민단체도 입법전쟁 가세…혼전 양상
한편 여야의 법안이 국회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도 독자적인 청원안을 낸다는 계획이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될 전망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민의 입장을 담은 독자적인 입법안을 마련, 6월 중순경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안은 입증책임의 완전전환을 택한다는 점에서 최영희 의원안과 같지만, 무과실보상기금과 형사처벌특례를 인정하지 않는 선택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심 의원안과 최영희 의원안 시민단체안이 국회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큰 골자에서는 최영희 의원안에 동의하지만, 무과실 보상기금을 허용할 경우 보상액수가 크지 않은 건들은 입증하는 부담을 느끼는 대신 무과실 보상을 받으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원칙적으로 무과실보상기금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