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지 실장(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기준실)은 올해로 심평원에서 입사한지 꼭 30년이 됐다. 전국민의료보험이 30돌을 맞이했으니 건강보험과 생일(시작점)이 같은 셈이다.
실제 정 실장은 심평원의 전신인 의료보험연합회가 출범되던 해 이른바 '나라의 부름'을 받고 심평원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에는 심사나 평가를 전담할 전문가가 부족하다보니 국립대병원 간호사들 중 일부를 차출해 의료보험연합회에 근무하도록 했죠. 당시 부산대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울로 가서 면접을 보고오라고 해서 그 길로 상경하게 됐어요."
그러나 첫 만남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낯선 서울길, 처음 접해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의 발을 무겁게 했다.
"면접날 서울에 도착했는데 지리를 잘 몰라, 근처 한 구둣방에서 연합회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깍두기 가게 2층이라지 뭐예요. 이건 뭔가 싶어 그길로 발길을 돌렸죠(웃음). 지금이라면 변명할 여지없이 낙방이었겠지만, 다시한번 기회가 주어졌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거예요."
본인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시작은 미미했지만,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심평원의 모든 일은 이른바 '수작업'을 거쳐야 했다. 청구서 양식도 직접 손으로 그렸고 심사도 수백, 수천장의 청구서를 일일이 넘겨 수기로 이뤄졌다.
일을 빨리하자니 웬만한 급여기준, 심사기준을 외는 것은 기본. 그런 세월을 거치자니 풋내기 신입사원이 어느 덧 전문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정지 실장이 거쳐온 직함만 십수개. 실장급 직위에서만 급여기준실장, 평가실장과 평가지원실장, 종합관리개발실장, 대전지원장, 서울지원장, 부산지원장 등을 지냈으니 심평원의 산 역사와 다름아니다.
그런 그녀에게 심평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을 꼽아달라니, 주저없이 'EDI의 보급'을 꼽는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EDI 개발, 보급 사업 모두 사실상 그녀의 두 손을 모두 거쳤다.
"그 만큼 어렸운 일이었고, 보람이 컸어요. 처음에는 모두들 안된다고 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EDI가 기본이 됐잖아요."
반대로 젊은 시절 너무 일에만 매달려왔던 점이 못내 아쉽다. "그때에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죠. 해야한다고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포기나 양보없이 밀어부쳤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삶에 여유가 없었던게 아닐까 싶어 못내 아쉬워요."
마지막으로 정 실장은 심평원의 대선배로서 후배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일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과 함께 한 30년 후회는 없어요. 부쩍 자란 건강보험제도가 내심 뿌듯하기도 하죠. 건강보험제도를 더 발전시켜 가는 것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것, 그것이 제 역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