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1개 의대 전임교원이 1만명에 육박하면서 교수당 학생수가 1명인 시대가 임박해지고 있다. 이처럼 양적 증가가 두드러지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전임교원 수술에 들어갔고, 일부 의대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다 일부 병원들이 전임교수를 우수인력 유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의학계 내부에서조차 진입장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의대 전임교수제도의 문제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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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임교원 남발…의대 없는 병원만 서럽다>
(중)논문 1편 안쓰고, 교육 등한시해도 교수님 (하)진입장벽 없는 학생교육병원 수술 시급하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의대 부속병원 외에 같은 재단 소속 의료법인에 의대 교수들을 파견, 의대생 임상실습을 위탁한 을지의대와 순천향의대에 칼을 들이댔다.
학교법인인 의대 부속병원에서 임상실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료법인과 별도로 협력병원에 교수를 파견한 것에 대해 더 이상 전임교원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의료법인에 파견된 전문의에 대해서는 고등교육법상 전임교원이면서 외래진료를 겸임할 수 있는 ‘이중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교과부의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을지의대, 순천향의대와 협력병원을 맺은 의료법인들을 학교법인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임교원이 아닌 겸임교원으로 활용하라는 게 교과부의 최후통첩이었다.
이와 함께 의료법인에 파견된 전임교원들에게 정부가 보조한 사학연금, 건강보험료에 대해서도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잘못을 시인한 전범과 불복한 전범"
그러자 동은학원은 백기를 들고 순천향 천안병원과 구미병원 등을 학교법인으로 전환시켰다.
반면 을지학원은 교과부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을지의대 백태경 학장은 이런 불편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명(순천향의대)은 잘못을 시인한 전범이고, 다른 한명(을지의대)은 이에 굴복한 전범이다.”
교과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가천의대에 메스를 가했다.
가천의대는 순천향의대, 을지의대와 달리 아예 학교법인 의대 부속병원을 두지 않은 채 재단 소속 길병원, 동인천길요양병원, 남동길병원, 철원길병원과 협력병원을 체결, 학생 실습병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병원은 모두 의료법인이다.
전체 협력병원 1700여명 교수 전임교원 박탈 위기
이에 대해 교과부는 협력병원에 근무하는 교수 가운데 학생 실습에 필요한 적정 전문의에 한해 전임교원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불인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직 교과부가 가천의대 소속 임상교수 가운데 몇 명을 전임교원으로 인정할 것인지 처분을 내리진 않았지만 처분이 확정되면 엄청난 파장이 불가피하다.
가천의대 외에도 관동의대(명지병원, 제일병원), 성균관의대(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마산삼성병원)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순천향의대, 을지의대가 교과부 처분을 받은 만큼 부속병원 외에 협력병원에 교수를 파견하고 있는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CHA의대(차병원, 분당차병원, 대구여성차병원), 한림의대(강동성심병원) 등도 소나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가 의대 협력병원을 상대로 대수술에 들어간 것은 이들 병원이 실제 학생실습에 참여한다고 보기 어렵고, 우수한 교수를 영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임교원을 남발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대 협력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사학연금, 건강보험료가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제동을 건 측면도 없지 않다.
현행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르면 의대는 부속시설로 부속병원을 갖춰야 하지만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다른 병원에 위탁해 실습을 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또 국립의대나 사립의대는 소속 특수법인(국립대병원)이나 의대 부속병원에 교수를 파견해 진료와 학생 임상실습 교육을 겸할 수 있는 이중적 지위가 인정된다.
하지만 의대 협력병원에 파견된 교수들은 이러한 장치가 없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겸직교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교과부 추계에 따르면 이들 협력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1700여명의 교수가 전임교수 자격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하지만 교과부는 두 가지 딜레마에 봉착했다.
하나는 상당수 의대들도 문어발식으로 대학병원을 운영하면서 실제 임상실습에 참여하지 않거나 연구 논문이 미비한 교수가 태반인데 의대 부속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무조건 전임교원 지위를 인정할 경우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 일부 의대 협력병원이 비록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교수들의 연구 업적이나 학생 실습의 질적 측면에서 의대 부속병원에 뒤떨어지냐는 점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의대 협력병원만 정조준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A의대 교수는 “국립이든 사립이든 상당수 의대들이 다수의 대학병원을 거느리고 있는데 진료 외에 연구, 교육에 충실한 교수가 몇 명이나 되고,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을 욕할 처지가 되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B의대 학장은 “의대 협력병원에 실습을 위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암묵적으로 겸직도 허용한 것인데 정부가 느닷없이 관련법을 적용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일부에서는 교과부가 사학연금, 건강보험료 몇 푼 지원하면서 힘 없는 사립의대만 문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진료, 명예 중 택일 불가피"
이런 이유로 인해 교과부는 가천의대에 대한 처분을 일단 미루고 부랴부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학생교육병원 지정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23일 의평원은 공청회에서 학생교육병원 지정안을 제시하고,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의평원이 제시한 4가지 학생교육병원 지정안의 핵심은 의대 부속병원이든 의대 협력병원이든 학생교육병원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설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교원 역시 학생교육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격을 인정할 게 아니라 연구실적 등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안도 내놓았다.
의대 입장에서는 이런 제안에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C의대 학장은 “의대 부속병원 전임교수라 하더라도 진료가 우선일 뿐 학생 교육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진료 외에 적어도 학생 교육에 20%, 연구에 30%를 할애해야 전임교원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의평원 안을 수용, 학생교육병원을 지정한다면 일부 대학병원이나 의대 협력병원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만약 지방병원이 학생교육병원으로 지정받지 못하면 더 이상 교수요원을 채용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우수한 전문의를 영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평원 관계자는 “학생교육병원이 되려면 충분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 논문도 안쓰고, 학생교육도 하지 않으면서 전임교수 지위를 보장해 국민 세금만 축내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병원장은 돈을 벌 것인지, 학생교육을 할 것인지 앞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