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그 중심에 서있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진료권고안을 채택하며 불을 붙이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병원들은 아직은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진료권고안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곡예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는 7일 뇌사자 및 만성질환자까지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진료권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생명을 단축시키는 의도를 가진 안락사나 의사의 조력자살에 대해서는 절대 불허를 명시하되, 말기암환자 뿐 아니라 뇌사상태 혹은 만성질환의 말기상태에 있는 환자나 보호자가 연명치료를 포기할 경우 이를 중단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앞서 최근 존엄사를 시행한 세브란스병원도 총 3단계로 이뤄진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뇌사자와 다발성장기손상자와 나아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지속적인 식물인간이면서 자발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자로 나눠 마련된 이 가이드라인은 현재 대법원에도 제출된 상태다.
이처럼 존엄사의 중심에 서있던 병원들은 앞다퉈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공론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병원들은 일장일단이 있다며 다소 신중한 태도다.
전문가집단에서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은 바람직하나 자칫 잘못하면 존엄사에 대한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A대학병원 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전문가 집단인 대학병원 교수들이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라며 "하지만 성급한 태도로 접근하다가는 논란만 확산되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 대학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법제화가 가시화 되기 전까지는 논의 그 자체로 만족할 것"이라며 "어차피 법제화가 이뤄지기 전 존엄사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위치한 위험한 곡예 아니냐"고 반문했다.
B병원 관계자도 "세브란스병원이나 서울대병원의 가이드라인을 살펴봐도 결국 중요한 부분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결국 법적, 국가적 기준이라는 큰 틀이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것 보다는 최대한 천천히, 또 신중하게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지금 존엄사는 결국 재판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 판례에 쌓이면서 자연스레 합의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