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흉부외과 수가 인상, 약인가 독인가
흉부외과의 낮은 수가,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7월부터 수가 100% 가산에 들어갔다. 수가 인상에 대해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수가 인상 카드만으로는 심장수술의 심각한 지역 불균형, 전공의 기피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흉부외과 수가인상이 남긴 문제와 대안을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1> 심장수술 서울 집중현상 백약이 무효
<2> 수가 인상, 빈익빈 부익부 심화 우려
<3> 나눠먹기식 전공의 배정 수술 시급
<4> 지방 대학병원 흉부외과도 경쟁력 있다
국내 심장수술의 빅5로 뽑히는 A대학병원은 흉부외과 교수 6명이 연간 1300례를 시행한다. 교수 1명당 평균 216례를 시행하는 셈이다. 휴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수술을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의 심장수술 권위자들은 수술 대기환자가 너무 많다보니 토요일에도 수술을 하거나 수술방에서 살다시피하는 게 현실이다.
반면 지방의 대학병원은 사정이 다르다. 지방의 B대학병원은 3명의 심장 전문의들이 연간 150례를 소화한다. 교수 1명당 1주일에 1례 정도만 심장수술을 한다는 얘기다.
심장수술 격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B대학병원의 경우 전공의도 전무하다.
B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전공의가 없다보니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 근무를 해야 하고, 응급 수술에다 수술후 환자 관리까지 다 도맡아 하다보니 레지던트와 다를 게 없다”면서 “몇 달간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심평원이 최근 발표한 수술전후 항생제 평가 결과를 보면 서울과 지방간 심장수술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심평원이 심장수술을 시행하는 병원을 대상으로 수술전후 항생제 사용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지난해 8~10월 3개월간 10건 이상 심장수술을 한 병원을 집계했더니 11곳에 불과했다.
경북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길병원, 건국대병원, 세종병원, 동아대병원 등을 제외하면 심장수술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병원 중에서는 경북대병원과 동아대병원이 유일하게 평가기준을 통과했다.
물론 계명대 동산병원처럼 지난해 인공심폐기를 사용한 순수한 심장병원만도 2007년 152례, 2008년 112례에 달했지만 심평원 평가기준과 달라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병원도 있긴 하다.
하지만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대학병원간 심장수술 격차가 심각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한 상임이사는 “흉부외과는 지금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3개월에 10건의 심장수술도 못하는 병원이 많다고 볼 수 있고, 병원간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잘라 말했다.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하는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가 수도권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 병원들이 나머지 22% 환자를 수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에서 이 중 9%를 점유한다고 하더라도 경북대병원,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병원당 환자는 수도권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역간, 병원간 심장수술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에서 7월부터 흉부외과 수가가 100% 가산되자 지방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C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수가 인상에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이 약 500억원인데 이중 5~6개 메이저 병원이 80%를 가져간다는 분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들 병원은 수가가 인상되면 연간 50억원 이상 진료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시설을 확장하고 전문의도 늘릴 수 있다”면서 “반면 지방 대학병원은 많아야 기껏 10억원 남짓이기 때문에 수가 인상 이전보다 빈익빈 부익부가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수가 인상분을 그간의 흉부외과 적자를 해소하는데 사용하려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일부 지방 대학병원들은 수가 인상이 서울 대형병원들의 경쟁력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 앞으로 빅5만 살아남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대한병원협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는 각 대학병원에 이번 수가인상분을 흉부외과 살리기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흉부외과 수가 인상이 지방의 심장수술 병원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보험위원장인 정경영(세브란스병원) 교수는 “문제는 지역간 심장수술 불균형이 점점 더 심화될 것이란 점”이라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당초 학회에서는 흉부외과 기피 문제에 해소하기 위한 수가 인상 외에 지역 불균형 해소 대책, 외상센터나 응급의료센터 흉부외과 전문의 의무적 고용 등도 정부에 함께 건의했다”면서 “그런데 다른 대책은 모두 빠지고 수가만 인상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가 예견되자 지방의 D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극약처방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지방 3~4개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들을 모두 합쳐야 서울아산병원과 맞먹을 정도가 되다보니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면서 “독일과 같이 정부가 권역별로 독립적인 심장센터를 건립하고, 지역 심장 전문의들을 한 곳에 모아 수술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E대학병원 교수는 “흉부외과 개원의가 살아야 하는데 전체 전문의 중 전공을 살리는 의사는 절반도 안된다”면서 “개방병원제도를 활성화해 개원이 가능한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의료사고구제법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