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환자가 진료에 비협조적이었다 하더라도 환자를 주의깊게 살폈다면 알아낼 수 있는 기왕력을 간과해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의사가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고등법원 민사 3부는 최근 폭행으로 인해 A병원 응급실에 내원, 디크놀 등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받았으나 이후 전격성 간염이 일어나 결국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이 의사의 과실을 물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의사과실이 아니라고 결정한 1심판결을 뒤집었다.
10일 판결문에 따르면 환자 B씨는 지난 2003년 12월 술에 취한 채 당구봉 등의 흉기에 맞았다며 안면과 두피에 출혈이 응고된 채로 A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이후 각종 검사결과 소변과 B형간염 검사는 정상이었지만 간기능 검사에서 간효소 수치가 정상범위의 1.5배~2배 정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사를 마치자 A병원의 의사는 항생제인 세프테졸과 디클로페낙(디크놀)을 주사했고 약 4일간 같은 약품을 주사했지만 환자는 큰 이상소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입원 후 5일여 기간이 지난 후 B씨는 혈압과 맥박이 지속적으로 정상수치를 벗어났고 구토와 설사증상이 지속됐다.
그러자 A병원 의사는 급히 CT와 X선 촬영, 간 기능검사를 시행했고 황달수치가 2.8에 이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B씨를 전격성 간염으로 의심, 인근 3차병원으로 전원했으나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1심 법원은 "당시 환자가 상당히 술에 취해 있어 평상시보다 간효소 수치가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환자와 보호자들 또한 B씨가 간손상을 입었던 기왕력을 고지 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상황을 볼때 의사가 단순히 간효소 수치가 높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정밀검사를 하는 주의의무를 발휘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음이 인정된다"고 의사의 손을 들어줬었다.
즉, 환자가 진료에 비협조적이었고 술에 취해있었던 상황이며 내원시 골절 등이 주요 증상이었던 만큼 의사에게 간에 대한 정밀검사 의무를 지우기에는 가혹하다는 것이 1심 법원의 판단이었던 것.
하지만 대구고법은 "입원 당시 혈액검사에서 간기능 이상이 확인됐고 이럴 경우 디크놀 대신 트라마돌을 투여하는 것이 권장된다"며 "하지만 A병원의 의사는 4일간 6회에 걸쳐 아무 의심없이 디크놀을 투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디크놀을 투여했다면 환자의 상태를 주의깊게 살폈어야 하지만 의사는 구토, 소화불량 등의 증세가 나타났을때도 간기능검사를 하지 않았다"며 "결국 의사가 주의의무를 게을리 해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하지만 환자가 술에 취해 의사에게 욕설을 하고 무단으로 병원을 이탈하는 등 진료에 비협조적이었고, 술로 인해 간효소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오인하기 충분한 사정이 있었음은 인정된다"며 의사의 책임비율을 15%로 한정해 총 4천만원의 손해배상금액을 지급할 것을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