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정부가 뺑소니나 무보험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국토해양부 주관으로 보상해 주는 ‘정부보장사업’ 광고 문구이다. 이를 보고 의료 분쟁의 현장에 서있는 나는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뺑소니 차 피해자의 억울함도 풀어주는 정부가 어찌 무과실 의료 사고를 모른 척 하는 것인가? 국민이 분만하다 나는 사고가 뺑소니 차 사고보다도 위로해줄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의료 분쟁을 한번이라도 당해본 의사와 환자 가족은 이 문제를 국가가 아무 대책 없이 방치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더 이상 경제적 이득이 없어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가 속출하고 있는 지금 저 출산 극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정부가 예측치 못한 위험이 가장 많은 분만 사고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의료 분쟁이 일어나면 많은 국민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한 해결을 불신하고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이용해 보상을 받으려 해왔고, 의사들도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돈을 주고 ‘주먹’을 막아 온 게 우리 현실이다. 의료 분쟁에 시달려본 의사는 분만처럼 위험도가 높은 진료는 포기하거나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려 왔다.
이렇게 국가가 방치한 의료 분쟁은 소신 진료를 위축시켜 의료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낮추려고 그리 애를 쓰는데도 여전히 높은 제왕 절개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의료 분쟁으로 인한 고통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가혹한 현실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하며 강력한 수가 통제 정책을 펴는 정부가 한편으로는 불가항력적인 무과실 의료 사고조차 의사와 환자 간의 분쟁으로 방치하는 것은 의사든 환자든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책무를 심각하게 유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료 분쟁 조정법은 22년째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이제는 이를 해결 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최근 의료 분쟁 조정에 대한 입법이 국회에서 다시 추진 중이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의 ‘의료 분쟁 조정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과 민주당 최영희 의원의 ‘의료 사고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 그리고 민주당 박은수 의원이 시민단체 청원을 반영한 ‘의료 사고 피해 구제 법안’ 등 3개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 법안들은 세부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일부 혹은 전적으로 전환하려는 내용이다. 특히 박은수 의원 발의의 시민단체 청원안은 전적으로 의료인에게 입증 책임을 전가하고 조정 위원회에 보건의료인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무과실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도 배제하고 있어 가장 우려되는 법안이다.
무과실 의료 사고는 뺑소니 차 사고 이상으로 국가가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보상해 줘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의료 분쟁 조정법은 의료 분쟁이 소신 진료를 위축시켜 의료의 왜곡을 초래하는 것을 막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고를 당한 환자의 보상 문제보다 방어 진료로 인한 의료 왜곡이 국민의 건강권과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는 무엇이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것인지 긴 안목으로 이 문제를 보기 바란다. 의사를 희생시켜야만 국민들에게 이득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의료 분쟁 조정법을 만든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의료 재앙으로 닥칠 것이다.
자신이 죽어갈 때 반드시 살릴 수 없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의사보다 분쟁에 대비하여 방어에 급급한 의사를 진정 국민이 원하겠는가? 통제 수가에 무한 책임을 지우면 어느 의사가 고위험 진료를 하려 하겠는가? 그 피해가 결국 의사 손에 위급한 생명을 맡겨야 하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정말 시민단체는 모르는가?
의료 분쟁 조정법은 환자와 가족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적정진료로 사명을 다하는 의사도 보호해야 한다. 이는 의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에게 방어 진료 보다 적정 진료를 받아야 하는 국민을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