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낮은 검사수가로 인해 병리과 지원을 기피하면서 심각한 전문의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
병리학교실 역시 교수들이 기초학 사수를 결의할 정도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병리학회 한운섭(이화의전원) 회장과 서정욱(서울의대) 이사장은 15일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병리학교실과 병리과가 처한 현실적 문제를 조명하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정욱 이사장은 “연간 전국에서 시행하는 조직검사 315만 건 중 38%, 세포병리검사 412만 건의 63%가 37개 수탁검사기관에 의뢰되는데 병리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의사의 업무 과부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환기시켰다.
전국 1200여 병원급 의료기관 중 160곳을 제외하면 아예 병리과가 없는데, 이는 검사 수가가 턱 없이 낮아 병리 전문의를 두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탁검사기관은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 병리과의원은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소수의 전문의가 오진에 오출될 정도로 많은 판독을 하고 있다는 게 서 이사장의 경고다.
대학병원이면서도 병리 전문의가 1명에 불과한 곳도 56개에 달했다.
대한병리학회가 조사한 결과 대학병원 병리과 전문의의 경우 1인당 연간 평균 4300건의 조직검사 판독을 하고 있지만 수탁검사기관 전문의는 이보다 4배 많은 1만6700건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병리과가 인력난에 허덕이는 것은 IMF 금융 위기 기간인 1999~2003년까지 5년간 전공의 지원자가 급감하면서 2003~2007년까지 평균 12명의 전문의가 배출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병리과 지원자가 매년 30~40명 수준으로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전공의 충원율은 여전히 30~50%에 그쳐 만성적인 전공의 지원 기피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 이사장은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이유는 검사수가가 미국의 15% 수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낮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위상이 낮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이로 인해 환자들이 오진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유럽의 병리과 적정 업무량 기준을 놓고 볼 때 국내 수탁전문기관 가운데 조직병리검사를 하는 37곳 중 24곳, 세포병리검사를 하는 29곳 중 12곳이 심각할 정도로 업무과중 상태라는 게 병리학회의 진단 결과다.
이들 기관의 검사건수는 조직병리 진단의 36.3%, 세포병리 진단의 51.3%를 차지하는데, 이는 그만큼 업무량 과중으로 인한 오진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운섭 회장도 우리나라 병리학교실이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 회장이 18개 의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개 대학만 병리학 학과목이 있고, 나머지는 없었다.
한 회장은 “국제화와 전문화 추세에 따라 병리학교실은 과거에 비해 휠씬 가중된 책무와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으며, 참으로 피부에 와 닿는 문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이날 전국 의대, 의전원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일동은 병리학회 학술대회에서 공동결의 제안안을 채택하고 나섰다.
주임교수들은 “병리학은 기초의학 중에서 중요한 중추적 학문임을 재인식하고 천명한다”면서 “따라서 병리학교실은 기초학교실로 지속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주임교수들은 학회가 △병리학 학습목표와 지속적 연구 개발 △병리학 교과서 편찬 및 개정, 개발 △CPC 자료의 개발 및 운영 △병리학 실습 교재 개발 및 운영 △학생 시험 문제 출제 개발 및 운영 등의 사업을 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주임교수들은 병리학교실과 병원 병리과가 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할 정도로 기초의학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