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장관의 권한을 심평원에 위탁한 별도의 대통령령 규정이 없는 사실이 자료제출 요구 거부로 기소된 의사에 대한 항소기각의 주요 사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23일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원장의 항소기각 판결문을 통해 “원심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어떠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검사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은 지난 8월 1심 선고공판에서 “심평원 직원이 임의로 자료제출을 요구한 부분과 관련서류 제출을 36개월로 연장한 것을 거부한 피고인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2007년 8월 서울 K의원에 대한 현지조사 중 심평원 직원이 자신의 명의로 된 자료제출 명령서를 김모 원장에게 전달했고, 김모 원장은 명령서에 응할 수 없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해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 위반 혐의로 업무정지 1년 및 형사기소된 건이다.
검사측은 항소이유로 “복지부 공무원이 관계서류 제출에 관한 사실관계를 인지하고 있었고 유선상으로 심평원 직원에게 보고를 받아 조사대상을 36개월로 추가할 것을 허락했다”면서 “심평원 직원의 자료제출 요구는 적법하고 피고인이 이를 거부한 행위는 위법함에도 원심은 사실을 오인하여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원심 판결의 부당성을 제시했다.
이에 재판부는 “형법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번 판결의 기본원칙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는 관련서류 제출을 명하는 주체는 복지부장관으로 되어 있는 점 △국민건강보험법(제88조)에 ‘복지부장관의 권한을 대통령령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단 또는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대통령령에는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점 등 항소 증거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또한 △행정절차법에는 처분을 하는 문서에는 그 처분 행정청 및 담당자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점 △복지부 공무원이 K의원에 한 번도 방문한 바 없이 유선상으로 심평원 직원의 말만 듣고 자료검토 없이 36개월분을 추가 조사하라고 했고, 다음날 K의원 방문했을 때에는 피고인에게 서류제출 요구를 한 적이 없는 점 등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보면 심평원 직원의 36개월간의 관계서류 제출요구가 적법하다고 볼 수 없어 이를 거부한 피고인의 행위가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을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원심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어떠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검사의 주장은 이유없다”며 항소기각을 주문했다.
연속 승소를 이끌어낸 이종석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이번 판결은 1심 판결보다 진일보해 복지부장관 명의의 문서로 자료제출을 요구하지 않는 한 위법함을 명확히 했다”면서 “의료기관 실사 절차를 세무조사와 유사한 사전통지와 변호인을 조력 받을 권리 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더 이상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후속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