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의 한숨 소리가 깊다.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등 정부가 약제비 절감 정책으로 내놓은 일련의 정책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하물며 시행조차 되지 않은 새 약가제도로 인해 대형병원의 의약품 공개입찰이 완전 유찰되는 등의 부작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내 A사 임원은 9일 "당장 최근 발표된 항혈전제 1차약제 기준 변경으로 150억원이 넘는 매출이 날아갈 판"이라며 "이번 사태가 앞으로 진행될 약제비 절감 정책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앞날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너무 많은 정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제약업계에 20여 년간 몸담았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은 처음이다. 처음부터 이길이 잘못된 길이였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며 자조섞인 푸념까지 늘어놨다.
다국적 B사 임원도 "정부의 압박정책이 도를 넘어선 것 같다"며 "모든 일에는 당근과 채찍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부가 시장원리를 내세우는데, 채찍만 행하는 모습이 마치 사회주의를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압박정책에 부작용도 쉽게 감지된다.
먼저 지난 8일 서울대병원 의약품 공개입찰이 모두 유찰됐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분당서울대병원과 치대병원이 향후 1년간 사용할 2514종의 의약품 구매를 위한 입찰을 실시했으나 도매상들이 보험약가 인하에 따른 손실을 우려해 응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서울대병원이 의약품 구매 입찰을 실시했다가 전 품목이 유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10월 시행 예정인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제도는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약을 상한가보다 싸게 사면, 차액의 일부를 병원에 돌려주는 것으로, 해당 약품은 다음해 약값이 인하되는 것이 골자다.
도매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처럼 거래처 확보를 위해 헐값에 의약품을 제공할 경우, 10월 이후 문제점이 발생해 약값이 깎일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제약사는 해당 도매상에 물건을 주지 않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유찰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도매측은 이 제도가 시행되는 10월 이전 재계약을, 병원측은 제도 시행과 상관없이 1년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리베이트 약가 연동제 이후 중소제약사의 공격적인 영업도 문제다.
국내 상위 C사 관계자는 "최근 상위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동안 중소제약사들의 공격적 영업 행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지금같은 시기에 불황을 타지 않는 기업은 다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