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서울대병원) 원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획기적인 것처럼 광고하는 의료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 원장은 20일 발간된 연구원 소식지 ‘근거와 가치’ 5월호에 ‘사실과 주장’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허 원장은 칼럼에서 20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Jamblichus가 “Medicine is the daughter of dreams"라고 한 말을 환기 시켰다.
그는 “현실이 안 좋은 상황일수록 우리가 좇게 되는 것은 꿈이며, 그것이 실현 가능한 꿈인지 여부를 따지기보다 우선 희망을 말해주는 사람을 믿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일반인들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의료에 관련된 전문가집단의 윤리는 어떤 집단보다 더욱 중요하다”면서 “의료인의 한 가지 행동,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생명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허 원장은 신문에 ‘획기적’이고, ‘세계 최초’인 난치병 치료제와 치료기술이 개발됐다고 수시로 보도되지만 ‘사실’이 아닌 하나의 ‘주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것이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많은 검증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주장’들이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주장이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흔한 상황은 개발자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검증한 결과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효과는 있지만 부작용이 심각해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설명했다.
허 원장은 의료인의 연구 윤리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모든 임상연구과제의 계획서는 기관연구윤리위원회(IRB)의 심의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공신력 있는 국제학회나 국제학술지는 연구자의 이해상충(conflicts of interest) 문제까지 공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미국의대협의회의 경우 특정 약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했거나 특허나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관련 제품의 임상연구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임상연구의 결과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획기적’인 치료법에 현혹돼 기존 치료법으로 적절히 치료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 환자들까지 혼란에 빠지는 일을 진료현장에서 볼 때마다 주장과 사실을 제대로 구분해주는 근거평가제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들이 꾸는 꿈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은 전문가그룹의 양심적인 검증시스템을 적법하게 거친 연구의 결과이지 언론 매체를 이용한 광고성 기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허대석 원장이 평소 근거중심의료(EBM) 정착을 주문해 왔고, 그가 현재 보건의료연구원 원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번 칼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건국대병원 송명근(흉부외과) 교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보건의료연구원은 복지부 고시에 따라 송 교수의 CARVAR 수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기관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CARVAR 수술이 조건부 비급여고시가 된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전향적 임상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보건의료연구원은 지난 3월 송 교수가 전향적 임상연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자 송 교수는 임상연구가 시행되지 않은 책임이 보건의료연구원에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연구원은 송 교수에 대해 IRB 심의를 통과한 CARVAR 수술 임상연구계획서를 완성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송 교수는 CARVAR 수술의 경우 IRB 심의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하고 있다.
허 원장이 송 교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추측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이해상충(conflicts of interest)을 언급한 점이다.
최근 대한심장학회도 송 교수의 이해상충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심장학회는 “사이언시티㈜는 송명근 교수가 설립한 기업으로, 본인의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데 따른 이해상충 문제가 있으며 이는 이 제품을 이용한 논문에 명확히 기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긴 것은 출판 윤리에 어긋난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허대석 원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근거가 불충분한 의료행위가 행해지고 있다는 원론적인 언급”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