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다 망하자는 결정이다. 어떻게 이렇게 끝낼 수 있나."(양재수 대의원)
"대의원들이 집행부에 힘을 실어줬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의사협회 관계자)
25일 치러진 의사협회 제62차 정기총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총회의 최대 쟁점은 경만호 회장의 의료정책연구비 1억원 횡령 의혹이었다. 결과는 경만호 회장의 승리였다. 대의원회는 경 회장이 '일 처리에 미숙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수용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부 대의원들은 불만을 터트렸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렇게 해서 횡령 의혹을 둘러싼 내부 갈등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의협 안팎에서 검찰 고발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어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경만호 회장은 여기에 '특수업무활동비' 2억5천만원을 덤으로 얻었다. 이에 따라 경만호 집행부는 의사협회의 정치적 역량 강화와 현안문제 해결 등 '의정비'를 합법적으로 확보하게 됐다.
관심을 모았던 선거제도 관련한 안건은 법령 정관심의분과위원회에서 모두 부결됐다.
먼저 경기도의사회가 발의한 '직선제와 간선제에 대한 회원 찬반투표 실시'는 재석 대의원 56명 중 12명의 찬성으로 부결됐다. 기표소 투표를 통한 의협회장 직접선출 발의도 56명중 11명이 찬성하는데 그쳤다.
간선제에 의한 선거인단 구성방식, 중앙윤리위원회 규정개정 건은 차기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정기총회는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한 상태에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횡령 의혹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외부 노출을 꺼린 대의원회 의장단이 집행부의 요청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대의원들은 "뭐가 그렇게 구리냐", "지나친 비밀주의는 오히려 오해만 키울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의장단은 요지부동이었다.
또한 총회가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 전의총 회원 70~80여 명이 회의장으로 몰려들어와 피켓과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여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큰 충돌을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은 총회장 입구에 세워진 경만호 회장의 화환을 부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회의장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게 회의 진행을 지켜봤다.
이번 총회는 대의원회가 집행부에 힘을 실어준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의원은 "횡령 의혹에 대해 대의원들은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며 "이 문제가 확대되면 의사협회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대의원은 "대의원들이 이런 식이니 회원들의 정서와 괴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