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제약사 영업사원의 하루
영업사원 병의원 출입금지, 특정제약사 불매운동 등 쌍벌제 파동 이후 의료계가 내놓은 일련의 조치들이 제약사 영업사원을 단단히 옥죄고 있었다.
<메디칼타임즈>는 쌍벌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꼭 한달이 되는 시점인 지난 28일, 국내 모 제약사 영업사원과 하루 일과를 동행해 봤다.
[오전 8:00] 그의 일과는 부서 회의를 통해 시작됐다. 20분 가량이면 회의가 끝난다고 했지만, 한 시간이 다 돼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그는 "통상적으로 오전 회의는 20분 내외로 간단히 끝나는데, 쌍벌제 이후 의료계 분위기나 타 제약사의 동향 등을 파악하느라 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오늘은 총 20곳의 병의원을 돌아야하는데, 오전에는 8곳을 방문해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쌍벌제 도입이 확정된 후 예민해진 제약사 영업환경을 동행 시작부터 느낄 수 있었다.
[오전 9:00] 서둘러 도착한 인천의 한 내과 의원.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근처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려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사왔다.
후문을 통해 방문한 의원에서 머문 시간은 3분 가량.
그는 "방금 들어간 병원은 원장하고 친분이 없어, 얼굴을 자주 비추는 과정"이라며 "이전에 두어번 가서 알게된 간호사들에게 원장이 아침에 뭘 마시는지 알아내고, 커피를 사온 것이다. 초반이라 할 말도 없어 일찍 나왔다"고 정황을 설명했다.
후문으로 병원에 들어간 이유를 묻자 "(쌍벌제 이후) 정문으로 들어가면 곱지 않은 주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후문을 이용한다"고 슬쩍 웃었다.
이후 비슷한 방법으로 병의원을 5곳 더 돌았다.
그는 보통 거래처를 돌아다니면 타 제약사 영맨들을 많이 마주친다고 했지만 이날은 고작 2~3명 가량만 눈에 띄었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라는 것이 그의 설명. 다만, 타 지역처럼 영업사원을 막는 병의원은 없었다.
[오전 11:30] 두 시간 가량을 바쁘게 움직이던 그는 아침을 안 먹었다며 아침겸 점심을 먹자고 했다. 오전 중 들러야할 곳이 꽤 남았지만, 여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기자와 동행해서 그렇지) 오늘처럼 열심히 병의원을 돌아다닌 적은 없던 거 같다. 쌍벌제 이후 현장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 방문하는데 꽤 눈치가 보인다. 실제로 일부 원장은 들어가도 거들떠도 안 보는 곳도 더러 있다"고 토로했다.
[오후 2:00] 점심을 먹은 뒤 차로 30분 가량 달려 이동한 인천의 한 메디컬 밀집 지역에 도착했지만 그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슬쩍 오후에는 병의원 방문을 안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는 "사실 쌍벌제 이후 영업사원은 마치 범죄자인 마냥 취급받는다. 병의원 들어갈 맛이 안난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은 뒤 "오후에는 널널하게 움직여도 되겠냐"며 동의를 구했다.
이어 "대부분 근방에서 PDA를 찍고 돌아서기 일쑤다. PDA를 사용 안하는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회사에) 출근 도장만 찍고 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쌍벌제 이후 병의원 출입을 기피하는 현상이 많아졌다"고 최근 영업 동향을 털어놨다.
쌍벌제 이후 위축된 영업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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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00] 시간이 꽤 흐른뒤 인천의 한 번화가에 자리잡은 내과를 찾아갔다. 취재를 나온 기자에게 미안했는지 원장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원장과는 밖에서 따로 만날 정도로 친하다며, 오전과 다른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내과 원장은 그와 친해보였다.
원장이 누구냐고 물으면 어찌 대답해야할 지 갈등하던 찰나, 그는 대뜸 기자라고 소개해줬다.
타이밍을 놓칠세라, 쌍벌제 이후 의료계 분위기를 재빨리 물어봤다.
그는 "쌍벌제 이후 신규로 방문하는 영업사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기존에 친분이 있던 영맨들 정도만 찾아오는 정도"라며 "'의료계 5적'으로 불매운동 대상이 되고 있는 회사 직원들은 거의 볼 수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솔직히 그간 친분이 쌓인 영업사원들이 많은데 요즘같이 기죽어서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 많다. 최근 영업현장은 무기력 그 자체"라고 말했다.
[오후 5:30] 다시 찾은 곳은 인근의 한 성형외과. 이곳 원장 역시 그와 친분이 두터웠다.
이쪽 의원이 어느 제약사 약을 많이 써준다더라, 어디가 처방을 바꾼다는 말이 있더라 등의 '그들만의 대화'도 들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솔직히 처방이 (제약사 영업사원과의) 친분 관계를 통해 결정되는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이런 것이 현실인데, 병의원 출입 금지 등 쌍벌제 관련 의료계 조치들이 영업사원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쌍벌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친한 것은 친한 것이고, 의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불매운동에 관심없지만) 최근 '의료계 5적'으로 지목받는 제약사 직원이 찾아오면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쌍벌제 관련해서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직을 고려하는 영업사원들이 많아졌다는 것의 그의 설명.
그는 "영업환경이 어려워지자 이직을 상담하는 친구들도 많아졌다"며 "(친분 있는) 몇 몇은 괜찮은 곳이 있으면 소개시켜줄 심산도 있다"고 귀띔했다.
[오후 6:30] 어느덧 시간이 6시를 넘기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 들어가서 최종 보고를 해야한다고 발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마디 꺼냈다.
하루 빨리 제약사 영업사원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