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7월부터 병리검사 수가를 15.6% 인하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선 병리과 전문의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 1일 병리검사 수가 인하안을 의결한 이후 병리과 전문의,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왜 수가 인하에 이처럼 분노하는 것일까?
메디칼타임즈는 병리과 수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장세진 교수를 만났다.
대한병리학회 보험위원장이기도 한 장 교수는 기자를 보자마자 병리조직검사실로 데려갔다.
검사실에 들어가자마자 포르말린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전공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병리 의사가 광학현미경 검사를 통해 확진을 내리기까지 과정도 여러 단계와 상당한 수작업을 요구했다.
일단 환자와 조직이 일치하는지 접수 과정에서 확인하면 육안검사, 사진촬영, 티슈 프로세스, 커팅, 염색, 전문의 판독, 판독 결과 입력, 검증 등 10여 단계를 밟는다.
조직 한 개를 판독하기 위해서는 최소 1박 2일이 소요되는데 수가는 얼마나 될까?
일례로 생검 1~3개 병리조직검사를 한 경우 수가는 2만 612원. 이 정도 수가도 2008년 이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수준이다.
복지부가 2008년 병리조직검사 수가 항목을 5개에서 13개로 재분류하고, 수가 산정 기준을 개선한 결과 의료기관들은 45% 수가 인상 효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서울아산병원도 과거 조직검사 파트에서만 40%의 적자를 기록했다가 상대가치 항목 재분류 이후 흑자로 돌아섰다.
장 교수는 “수가 항목을 재분류하기 이전에는 태반 조직검사료가 태반 폐기물 처리비보다 낮을 정도였다”면서 “그래서 세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내달부터 수가를 인하하기로 하면서 생검 1~3개 병리조직검사만 하더라도 수가가 1만8155원으로 떨어진다.
이번 결정은 2008년 수가를 재분류하면서 1년간 급여 청구 현황을 모니터링해 자연증가 수준 이상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증가하면 수가를 재조정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건강보험 청구현황을 모니터링한 결과 병리조직검사 행위 재분류 이후 총 327억원의 재정이 추가 소요됐다.
그러자 복지부는 청구 빈도가 증가해 재정증가를 초래한 171억에 해당하는 수가를 조정했다. 다만 자연증가분과 합리적 급여기준 개선에 따른 재정증가분 155억원에 대해서는 수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 같이 복지부와 대한병리학회가 사전 합의에 따라 수가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리과 전문의들이 반발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한병리학회 보험위원장이기도 한 장 교수는 “애초부터 적정 수가를 인정해 준 게 아니라 수가 항목을 재분류하면서 어느 정도 적자를 만회한 것인데 다시 인하하면 적자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병리과 수가를 저평가한 상태에서 보험재정을 고정시켜 놓고 이를 초과했다고 해서 수가를 인하하겠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진료과별 보험재정을 고정하더라도 수가가 저평가된 과에 대해서는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면서 “흉부외과와 산부인과 수가를 100%, 50% 인상한 것처럼 병리과 역시 정부의 관심이 절실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병리과 의사들이 수가 인하를 우려하는 또다른 이유는 전문의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병리과가 적자를 면한 것은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용하고, 중노동을 감내한 결과이지 결코 수가가 높아서가 아니다”고 환기시켰다.
이런 사정상 수련병원 병리과 전공의들은 새벽 1~2시까지 업무에 매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장 교수는 “어느 정도 수가를 현실화해야 인력을 보강할 수 있고, 전공의들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전공의 지원자도 늘어나는데 수가를 다시 인하하면 누가 수련을 받으려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병리과 의사들은 수가가 인하되면 내년 전공의 지원율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판단하고, 벌써부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장 교수는 복지부가 여러 단계의 의견수렴과 공론화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수가 인하안을 의결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병리수가 인하 이전 약 1년간 협의를 한 것은 사실이고 최종안이 5월 17일 나왔다”면서도 “하지만 그날 이후 건정심에서 의결되기 전까지 전문가회의, 설명회, 상대가치기획단 회의 등이 있었지만 학회에는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병리학회와 협의하지 않은 채 2주만에 일사천리로 수가를 인하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병리과는 복지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데 이런 협의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어 장 교수는 “행위 재분류 이후 병리과가 많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수가 인하로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특히 전체 생검 조직검사의 40%를 수행하는 수탁검사기관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