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규약이 시행되면서 의학회가 흔들리고 있다. 급격하게 줄어든 기부금으로 살림살이가 급격히 나빠졌고 국제학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방만한 운영방식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이에 따라 공정경쟁규약으로 촉발된 학회의 위기상황을 짚어보고 올바른 학술모임이 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공정경쟁규약에 몸살앓는 의학회
(중) 밥값도 안되는 등록비…관습 버려야 (하) 변화에 대한 요구…활로는 어디인가
수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공정경쟁규약. 이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눠지고 있지만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학회 모두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도, 국민도 학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이상 그동안의 관행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다.
홀로서기 나선 학회들…"시대의 흐름"
올해 제약사들의 후원을 거의 받지 않고 학회를 개최한 대한뇌종양학회. 이 학회는 학술상과 부상을 모두 학회의 기금으로 수여하고 있다.
일부 제약회사들이 이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모두 고사했다. 학회 자체 교육도 상당 부분을 학회의 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이번 학술대회도 최대한 제약사들의 후원을 자제하고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부스비용만을 받았다.
뇌종양학회 정용호 회장(고려의대)은 9일 "학회 내부에서도 제약사의 후원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받지 않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며 "이에 따라 제약사 후원 행사를 사실상 모두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회가 태동하고 20년이 흐르는 동안 자금을 잘 굴려 이제는 일정 부분 기금도 모아놓은 상태"라며 "굳이 제약사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공정경쟁규약에도 흔들림없이 학술모임을 지켜가는 학회들이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도 이중 하나다. 대부분 학회들이 공정경쟁규약으로 국제행사가 불투명해졌다고 하소연 하고 있지만 올해 국제학회를 개최하는 당뇨병학회는 이미 행사준비를 마쳤다.
물론 다소 불편한점이 있었지만 회원들의 등록비 등으로 모여진 학회의 자금을 활용해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라는 설명.
당뇨병학회 박성우 이사장(관동의대)은 "공정경쟁규약으로 타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학회가 가진 자금이 있었기에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미 규약이 시작된 이상 앞으로도 학회의 자금을 효율적으로 굴려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라며 "학회비를 인상하는 방안도 회원들과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인화 노력도 한창…활로찾기 움직임
법인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학회들도 늘어가는 추세다. 정부와 국민들이 의학 학술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행적으로 영수증 처리없이 학회를 운영하고 필요할 경우 제약사의 후원금에 기대던 회무방식에서 벗어나 떳떳이 세금을 내고 투명하게 기부금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의학회를 비롯 상당수 학회들이 법인전환을 마친 상태며, 공정경쟁규약이 실시되면서 많은 학회들이 법인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대다수 학회들은 영리법인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는 대전제에 공감하고 있다.
더이상 주먹구구식으로 학회를 운영해서는 오히려 정부나 국민들에게 불신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학회들의 변화에는 의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와 국민 모두 이제는 의료업을 '의술'이라기 보다는 자영업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질서 "공생의 길 찾아보자"
하지만 이같은 변화의 물결이 꼭 공정경쟁규약으로 인한 것으로 볼수는 없다. 또한 분명 규약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수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공정경쟁규약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제약업계가 이에 대한 한계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선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우선 보건복지부가 만든 TF팀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 제약계가 현행 공정경쟁규약의 한계점과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TF팀을 활용해 새로운 공정경쟁규약을 만들기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이뤄진 1차 간담회에서 정부와 의료계 및 제약계는 현재 규약이 리베이트는 물론, 순수한 학수활동까지 막고 있다는데 동의하고 양쪽이 공동으로 새로운 규약을 만들어보자고 합의했다.
규약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은 유지하되, 과도하게 규제가 가해지고 있는 부분은 유동적으로 풀어 공생의 길을 마련해보자는 시도다.
대한의학회 김성덕 회장은 "잘못하는 부분은 규제가 필요하겠지만 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근도 함께 줘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국내 의학자들이 노력해 이룩해온 눈부신 학술활동을 일부 리베이트로 모두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복지부도 이같은 방향에 대해 긍정적이다. 불법적인 부분은 단호하게 끊어내야 겠지만 이로 인해 학술활동이 저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다.
김강립 보건산업정책국장은 "학술활동을 과도하게 저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면 정부가 힘을 발휘해 이를 조정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의료계, 의학계와 산업계 모두가 공통된 방향을 바라보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가자는 인식을 공유해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며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정부도 과감히 규제를 개혁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