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노인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요양기관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시설이 열악한 요양병원들이 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후 요양시설과 환자 유치경쟁에 나서면서 환자이송, 전달체계는 무너진지 오래며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각종 규제들로 우수한 요양병원들까지 망가지는 기형적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노인의료의 롤모델로 꼽히는 일본을 직접 찾아 선진 노인의료의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진화의 결정체 노인의료-복지 복합체 (2) 한국은 있고, 일본은 없는 두가지
(3) 제도와 현실의 괴리 겉도는 요양병원
(4) 공격적 변화만이 유일한 생존책
"환자에게 기저귀를 채워놓을 거라면 굳이 간호사와 보호사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일본의 한 노인요양병원장의 말이다. 일본 요양병원에서는 환자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철칙이다.
환자의 배변훈련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만약 와상상태에 있다고 해도 의식이 있는 한 간호사나 보호사가 변기까지 이동을 도와 최대한 스스로 배변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의 대다수 병원에서 와상 혹은 신체장애 환자들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재활' 요양병원과 '고려장' 요양병원
일본의 오카병원 테츠오 하마다 원장은 "의식이 있는 환자라면 누구도 기저귀에 배변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배변할 수 있는 환자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병원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에서 우수한 요양병원으로 꼽히는 코쿠라병원. 이 병원은 규모가 200병상이 넘고 와상환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욕창이 발생하는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몇 개월에 한번씩 한두명 욕창이 발생하지만 이는 다소 특이한 체질에서 비롯된다.
코쿠라병원에서만 욕창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대부분의 요양병원들의 욕창 발생률은 한국의 10분의 1 미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김덕진 회장은 병원의 역할을 어디에 두느냐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김덕진 회장은 "일본은 최대한 빨리 환자를 일상생활로 보내는 것에 병원에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국내 요양병원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도 상당수 국민들은 요양병원이 '치료를 위한 병원'이 아니라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실제로 질 낮은 상당수 요양병원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환자의 자택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본과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는 한국과의 차이가 이런 상반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일본 오카병원의 하마다 원장은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신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저귀를 채우고 병상에 누워있게 해서는 이러한 답을 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차이가 만든 기적…환자 70%가 자택 복귀
이러한 차이는 곧 자택복귀율로 나타난다. 오카병원의 경우 입원환자의 70% 이상이 가정으로 복귀한다.
이는 다른 복합체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찾은 상아이메디컬그룹도, 하쿠아이카이병원도 모두 70%대의 복귀율을 기록했다.
이들 병원이 일본에서도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병원임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기적은 너무나 사소한 부분에서 쉽게 목격된다. 환자의 발목에 채워진 만보계만 봐도 그렇다.
코쿠라병원은 아침에 일어나면 환자의 발목에 작은 만보계를 달아준다. 환자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평균 운동량에 미치지 못하면 원인을 파악하고 물리치료사를 통해 적정량의 운동을 보강한다.
상아이메디컬그룹에서는 식사시간이 되면 병상에서 환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이 없는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식당에서 식사를 진행한다. 나중에 자택으로 복귀할 때를 대비한 또 하나의 작업치료 과정인 것이다.
상아이메이컬그룹 요시아키 모리 원장은 "누구도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어느 누가 변기가 옆에 있는 병상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병상으로 식사를 배달해주는 게 병원으로서는 훨씬 편한 일이지만 이는 환자의 재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약간의 도움을 받더라도 스스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훈련해야 집으로 복귀했을 때 보다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