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노인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요양기관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시설이 열악한 요양병원들이 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후 요양시설과 환자 유치경쟁에 나서면서 환자이송, 전달체계는 무너진지 오래며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각종 규제들로 우수한 요양병원들까지 망가지는 기형적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노인의료의 롤모델로 꼽히는 일본을 직접 찾아 선진 노인의료의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진화의 결정체 노인의료-복지 복합체
(2) 한국은 있고, 일본은 없는 두가지
(3) 제도와 현실의 괴리 겉도는 요양병원
(4) 공격적 변화만이 유일한 생존책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코쿠라병원. 이 병원에는 200병상 규모의 아급성기 병원과 우리나라 요양시설에 해당하는 노인보건시설, 여기에 데이케어센터와 특별양호노인홈, 방문재활센터가 모두 모여있다.
일본 요양병원의 90% 이상이 운용하고 있는 노인의료-복지 복합체의 전형적인 모습. 고령자가 질병이 발병하면 가정으로 복귀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이 병원 안에서 이뤄진다.
환사 상태에 따라 병원-시설 유기적 이동 '시너지 효과'
실제로 이 병원은 대학병원 규모의 급성기병원에서 환자가 전원될 경우 회복기 재활병동에서 케어를 맡는다. 이 병원의 가장 많은 인프라가 158병상의 재활병동에 모여있다.
재활전문의 5명이 이 재활병동에서 근무하며 내과, 외과, 신경외과 등 각 분야 전문의 12명이 함께 근무한다.
재활병동의 특성에 맞게 간호사와 치료사의 수도 상당하다.
병상은 158병상에 불과하지만 근무하는 간호사만 70명이고 물리치료사가 50명이 넘는다. 이외에도 작업치료사와 개호보호사들의 수를 합하면 무려 234명이 환자들을 돌본다.
이 병동에서 자택으로 돌아가는 환자는 무려 70%가 넘는다. 그것도 대부분 3개월 안에 치료를 마친다.
이중에서 자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경우 40병동 규모의 장애자병동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다시 57%가 자택으로 돌아가며 그래도 치료나 재활이 완전하지 않을 경우 요양동으로 이송된다.
150병상 규모의 요양동으로 옮겨지면 이제 개호보험, 즉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의 영역이다.
이 곳에서는 의료진과 개호보호사들의 케어를 받으며 오랜 기간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병행해 자택 복귀를 돕는다. 물론 상태가 다시 나빠져 병원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매우 간단하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자택에 돌아가더라도 케어는 지속된다.
병원의 방문재활, 방문간호센터에서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지속적으로 환자를 살피고 필요하면 다시 요양동이나 병원으로 이송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적의 치료환경을 살펴 유기적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이 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복합체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병원과 시설을 오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별도의 신청과 양식도 없으며 병원의 신청서 하나만으로 정부도 유동적으로 급여비를 적용해준다.
요양시설에 있다가 상태가 안좋아져 병원으로 이송되면 간단한 통보만으로 환자는 개호보험 환자에서 건강보험 환자로 전환된다. 병원으로서도 같은 그룹내 환자니 만큼 이같은 이송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병원 하마무라 원장은 "복합체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최소한의 시간에 환자를 자택에 돌려보내는 것"이라며 "요양병원과 시설 사이에 긴밀한 공조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복합체들은 더욱 효율적인 연계방안을 찾는데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하쿠아이카이병원은 아예 급성기병상과 요양병상, 요양시설과 재택간호센터가 모두 한 건물에 있다. 효율을 극대화 하기 위해 병원과 시설을 이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요양시설에 입원한 환자들은 응급상황이 발생되면 즉각 병상에 누운채로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어 입소 환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특히 한 재단 안에 병원과 시설이 공존하면서 병원 의료진과 시설의 보호사간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이뤄져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재단측의 설명이다.
생존 위해 찾은 길, 노인의료 새 지평 열다
사실 이러한 복합체의 모습은 일본 요양병원들이 만들어낸 진화론의 결정체다. 경쟁에서 이기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 끝에 만들어진 생존책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00년대 후반 요양병상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일본 정부가 40만 병상을 넘어섰던 요양병상을 15만 병상만 남겨두고 시설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개호보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수가를 지급하면서 병원들의 시설 전환을 유도했다.
정부가 의도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이 정책은 성공을 거뒀다.
요양병원들은 생존을 위해 병원과 시설을 공유하는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개호보험에 매력을 느낀 급성기병원도 시설 개설에 나서면서 급성기-재활-시설이 공존하는 복합체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복합체들은 철저하게 지역민들을 공략하며 주민 흡수에 나섰고 이로 인해 지역내에서 완전하게 노인들을 케어할 수 있는 지역기반 네트워크 복합체가 만들어지기 이르렀다.
오이타에 위치한 오카병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카병원은 원래 심장질환 전문 급성기병원이었다.
하지만 지역내 경쟁병원들이 난립하자 활로를 찾아 복합체로 전환해 지금은 인근 지역에서 가장 인정받는 병원으로 거듭났다.
이 병원은 현재 230개 급성기 병상과 77개 요양병상, 90병상의 노인보건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고령자들이 그룹을 이뤄 재활과 요양을 겸할 수 있는 그룹홈 시스템을 갖추면서 복합체로 재탄생했다.
이 병원의 가장 큰 장점은 의료진의 인프라다. 231병상의 급성기병원이 주축이 되는 만큼 타 복합체에 비해 의료진과 시설의 수준이 높다.
이 병원은 복합체지만 한달에 100건이 넘는 응급환자를 받고 있으며 스텐트 등 심장수술만도 100여건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300억원을 들여 사이버나이프 등 방사선 암치료기를 들여놓으면서 암 치료 인프라도 구축했다.
하지만 이 병원의 가장 큰 고객은 역시 노인이다. 복합체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병원의 전략이다. 즉, 암치료를 하더라도 고령자, 심장수술도 고령자에 타깃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즉, 급성기병원은 지역내 응급환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최대한 외래환자를 줄이고 요양병상과 노인보건시설, 그룹홈 등 그룹 내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이 병원 의료진들은 오후 외래가 아예 없다. 그룹내 고령자들을 살피라는 반 강제적인 조치다.
이 병원 데쯔오 하마다 원장은 "의료부터 재활, 복지, 요양까지 계속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복합체의 핵심"이라며 "환자에게는 최선의 토탈케어가 제공되며 병원의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환자풀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