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학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의사의 재량권을 최대한 인정해줘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의사는 자신의 의학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한 판단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만큼 처치결과가 의사의 과실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제1부는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항응고제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이 부과된 의사가 판결의 부당함을 물어 제기한 상고심에서 의사의 주장을 인정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29일 "의사가 행한 치료가 현재 의학수준과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진료의 결과만을 가지고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며 "원심은 이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의사에게 책임을 부과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환자 A씨는 의사 B씨에게 승모판막 치환술을 받았으나 갑작스런 판막의 기능부전으로 폐쇄부전이 나타나 결국 호흡곤란과 쇼크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의사가 수술 후 항응고제 관리를 소홀히 해 INR(항응고제 요법 국제 표준화 단위)이 지나치게 낮게 유지되면서 환자가 사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의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했다.
하지만 의사는 상고를 통해 환자가 사망하기 직전 시행한 심초음파 검사결과에서 환자의 판막기능이 양호했으므로 이를 INR 관리소홀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현재 외국에서는 승모판막 치환술을 받았을 경우 INR을 2.5~3.5 사이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INR의 하한선에 대한 논의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며 일부 의학논문에서는 INR의 하한선을 1.5 정도로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료기록을 보면 의사는 환자의 INR이 1.09를 기록하자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3mg씩 투약해 INR을 1.57~2.10사이로 유지시켰다"며 "또한 국내 병원들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1주일에 한번씩 INR 검사를 충실히 했다"고 덧붙였다.
즉, 현재 국내에 알려진 의학적 지식으로는 의사가 과실을 저질렀다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
대법원은 "의사는 환자의 신체상태와 혈전 형성 및 항응고제에 대한 반응정도를 고려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INR 유지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며 "환자의 INR 수치가 현재 의학통념상 크게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어 "따라서 INR 수치를 낮게 유지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한 원심은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힘들다"며 "이 부분을 지적하는 의사의 주장은 이유있으므로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