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이원용)는 전국의 전공의 942명을 대상으로 수련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대답이 42.2%, 80~100시간 근무한다는 응답도 26.2%에 달했다.
본인의 업무량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74.4%가 '과다' 또는 '매우 과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전협과 병협이 연간 14일 휴가를 보장하기로 합의했지만 64%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다고 대답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서로 휴가를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게 전공의들의 하소연이다.
이원용 회장은 “서로 눈치만 보느라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것은 병원 차원에서 명확한 규정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휴식도 없이 이어지는 과도한 업무는 환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의학회는 이처럼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개선되지 않자 최근 26개 전문과목학회 수련교육이사 워크샵에서 ‘근무시간 상한제 도입안’을 제시했다.
대한의학회 전문의제도 개선방안 연구위원인 유경하(이화의대) 교수는 “미국은 1980년대 초반 18시간 계속 근무중이던 인턴이 실수로 병용금기약물을 처방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근무시간 상한제를 도입했다”고 환기시켰다.
유 교수에 따르면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도 근무시간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무시간 상한제는 주당 최대 근무시간, 최대 연속 근로시간, On Call 근무횟수, 최소 휴식시간, 야간 당직근무 횟수, 의무 휴식시간 등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이 유일하게 2008년 전공의 근무지침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서울대병원 전공의 근무지침에 따르면 주 60시간 근무, 당직 및 연장근무 최대 시간 주 88시간, 당직 포함 연속 근무 48시간 초과 금지, 임신중인 여성전공의 90일 출산휴가 부여 등을 담고 있다.
유 교수는 “근무시간 상한제는 환자 안전을 확보하고, 학습적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한의학회가 마련한 근무시간 상한제 도입안은 최대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고, 주당 하루는 모든 학습적 및 임상적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일일 10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당직은 최소 3일 간격으로 하며, 당직을 포함해 연속 24시간 근무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근무시간 상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수련교육비 지원 등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대한의학회의 입장이다.
유 교수는 “의료는 공공재화이기 때문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수련교육에 투자해야 하며, 대체인력 확보, 전공의 연차별 업무 균등 분배, 진료과별, 병원별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의대 교수는 “외국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전공의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의 투자가 전무하다”면서 “이로 인해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왜곡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B의대 교수는 “80시간 근무 상한제는 당연히 도입돼야 하지만 문제는 전공의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80시간을 초과해 근무를 시키면 병원이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초과 근무수당을 책정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전공의 초과근무수당을 20만원으로 정하고, 최소 연봉제를 시행해 경영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전공의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