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의사 중에는 연장 탓만 하는게 아니라 더 나아가 연장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어 비뇨기과 어홍선 원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노련한 장인'이지만 가끔 연장 탓을 한다.
서구에서 만들어져 동양인에 체형에 맞지 않는 의료기기나 보기에는 좋지만 실제 수술에는 불편한 기구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성능 개선을 위해 의사들이 현장에서 느낀 개선점을 제조사에 피드백 해줘야 하지만 바쁜 의사 생활에 그러기란 쉽지 않을 터.
어홍선 원장은 4~5천 건의 정관 수술을 하며 이 수술에 쓰이는 '클램프' 기구가 불편하다고 느꼈다. 힌지(hinge) 앞쪽이 너무 길어 수술할 때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다, 정관을 잡아주는 둥근 집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년간 머리 속에 구상만 하다가 1년 전에서야 제작에 착수했다.
"개선된 클램프를 제작하려고 하니 설계도면을 그릴 줄 아나, 그렇다고 선반을 운용할 줄 아나,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 지인이 의료기기를 만드는 업체를 소개시켜 줬죠."
지인이 소개해준 의료기기 제조 업체는 단순한 업체가 아니었다. 어홍선 원장처럼 의료기기를 개선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런 의료기기를 재 설계해주고 변경해주는 일을 도맡아 해주는 업체였던 것이다.
업체 사장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자 일에 가속도가 붙었다.
의견을 교환하고 시제품을 구체화 시키는 과정을 거치자 머리속에 떠돌던 막연한 생각들이 구체화된 실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홍선 원장은 머리속 생각을 구체화 시켜준 업체 쪽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전했지만 어 원장처럼 별도의 시간과 돈을 들여 기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정관 수술용 '클램프'의 개선 아이디어는 사장됐을 터.
시제품이 나오자 어 원장은 일주일 전 대한남성과학회에서 이 기기를 발표했다. 회원들의 호응도 좋았다는 후문이다.
기존 기기보다 수술할 때 생기는 절개창을 50%로 축소, 1cm에 달했던 절개창을 0.5cm로 줄일 수 있는 등 기능 개선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의료기기 개선하고 그 결과를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생각 때문에 호응이 좋았던 것이다.
실용신안을 신청한 어 원장은 등록이 마무리 되는 대로 이 기기를 공개할 생각이다.
"의사가 편안한게 수술을 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환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갑니다. 편안하게 수술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으면 수술 결과가 좀 더 잘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환자들 반응도 좋다. 그는 향후에도 다른 의료기기도 불편한 점을 찾아 개선된 의료기기를 만들 생각이다.
"9년 전에도 '자가도뇨 손잡이'를 개발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잘 안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조금씩 쌓이면 결국 의료 수준과 수술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돈, 시간 등 여간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지만 의료계 발전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