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막기 위한 대한약사회의 움직임이 의료계와 마찰을 빚을 전망이다.
대한약사회가 OTC 약국외 판매에 논의에 앞서 대대적인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만 9천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도 처방전 리필 제도와 경질환의 직접 조제 허용을 촉구하며 김구 집행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약준모는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행부의 사퇴 운동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약사회 내부에서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자칫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논란의 불똥이 의료계에 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전문의약품의 일반약 전환, 약사는 잃을 것 없다"
23일 대한약사회는 전국 임원·분회장을 소집,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 저지를 위한 긴급 결의대회을 열고 회원들의 내부 결속을 강화했다.
대한약사회는 결의대회에서 "일부에서 국민들이 불편하다는 여론을 만들어 의약품 슈퍼판매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여론을 호도하는 잘못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약국외 판매 논의에 앞서 대대적인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 요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약사회는 일반약의 슈퍼 판매 촉구 논란에 의료계의 여론몰이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 카드로 경고를 날린 셈이다.
이와 관련, 대한약사회 고위 관계자는 "OTC의 슈퍼 판매가 허용되려면 의약품 분류가 선행돼야 할 것이고 대한약사회도 전문의약품 전환 목소리를 낼 것이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일반의약품 시장을 뺏긴다 해도 전문의약품을 시장을 가져오면 사실상 약사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일반의약품의 시장을 뺏기지 않을 뿐더러, 만약 사태가 급박하게 변해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허용된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없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분류 진행에 따라 약사들의 일반약 전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는 의료계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처방전 리필제도, 경질환 직접 조제 목소리도 가세
한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도 대한약사회에 처방전 리필제도와 경질환 직접 조제 허용을 촉구하며 김구 집행부를 압박하고 있다.
약준모는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논란의 확대가 김구 집행부의 대응 미비와 무능력에 있다고 판단, 김구 집행부의 사퇴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가 되는 점은 이들 단체가 약국에서의 경질환 직접조제 허용과 처방전 리필제도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김구 집행부의 사퇴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데 있다.
대한약사회로서는 약사회 회원들간의 힘겨루기를 외부로 향하게 할 계기를 만들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약준모도 슈퍼 판매를 막자는데 약사회와 뜻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는 어렵지 않아보인다.
결의대회에 앞서 벌어진 시민단체와 대한약사회의 충돌에서도 약준모 회원들은 시민단체와 몸싸움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 약사회를 옹호한 바 있다.
시민단체-약사회 무력 충돌, 전의총 개입했나?
한편 약사회는 OTC 슈퍼 판매 논란의 주범이 의료계에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일간지 광고·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OTC 슈퍼 판매를 주장한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국시연)가 의료계의 후원을 받는 단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약준모 회원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국시연의 한 회원은 약준모 회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의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약준모의 한 회원은 국시연의 후원단체가 전국의사총연합이라고 주장하며 "의사들이 나서서 OTC 슈퍼 판매를 위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국시연 창립대회에서 전의총 노환규 대표가 자리에 참석, 국시연에 지지의사를 전한 바 있어 약사회는 이들 단체간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의대회 '득과 실'…결속 강화 vs 구호뿐인 대회
대한약사회는 이번 결의대회를 통해 얻은 게 더 많다는 평이다.
약준모 회원이 적극적으로 국시연의 성명서 낭독을 저지하는 과정을 통해 그간 껄끄러웠던 약사회-약준모의 관계가 원만해지는 듯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약준모는 전국 분회장이 집결하는 결의대회를 겨냥, 김구 회장의 사퇴 촉구 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이었지만 국시연의 약사회관 진입을 계기로 '약사회 친위대'로 돌변했다.
국시연의 슈퍼 판매 허용 성명서 발표를 막는 과정에서 이들을 막아서며 격한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결의대회에서도 약사회는 '내부 결속 강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김구 회장 등 10여명의 임원들이 혈서를 쓰며 "슈퍼 판매를 반드시 막겠다"고 외쳐 약사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반면 일각에서는 약사회가 혈서를 써야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결의문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간 나온 대책들의 재탕에 불과할 뿐 더 이상 슈퍼 판매를 저지할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약사회는 "의약품 구입과 사용에 있어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거나 "엄격하고 철저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의약품 유통체계가 더욱 강화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뿐 구체적인 대안 제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