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최된 의료일원화 공청회가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채 마무리됐다.
의료계-한의계가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 천연물신약 등으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는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렵사리 마련된 공청회였지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이는데는 상당 부분 어려움이 있었던 것.
의료계는 한약재의 규격화와 한의학적 치료의 과학적 검증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데 반해 한의사들은 의료계의 근거없는 폄훼가 계속되는 한 일원화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으면서 소득없이 공청회가 마무리됐다.
의대와 한의대에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만남을 주제로 활발한 강의를 하고 있는 나도균 복수면허의사협회장을 만나 최근 촉발된 의-한의사의 갈등과 해결책 등을 물어봤다.
▲의사이면서 한의사이다. 어떻게 복수면허를 취득할 생각을 했나.
간단히 약력을 소개하면 1983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10여년간 개원을 한 바 있다. 그러다 다시 경희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 면허도 취득했다. 지금은 일선에서 부정맥, 협심증 등 심장 질환을 중심으로 양한방 병행 치료를 하고 있다.
한의대 진학 이유는 간단하다. 의학이 '만능'이 아니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대에 다니면서 어머니께서 무릎이 시리다는 말을 했지만 현대의학에서 무릎이 시리다는 말은 없다고 밖에 말을 못했다.
그러다가 내 자신 역시 무릎이 시큰거리는 경험을 했고 현대의학이나 과학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한의대에서 배워 보기 위해 진학을 결심했다.
개원해 진료를 하면서도 치료가 안되는 질병을 보면 매번 한계를 느꼈다. 왜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된 치료법들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는 과학과 천문학 등 똑부러지는 학문을 좋아한다. 과학에서 질량과 에너지의 상관 관계를 'e=mc2'으로 표현을 한다면 한의학에서는 기와 형은 상호 교류한다고 설명한다.
과학이나 한의학이나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고 감동한 기억이 있다.
▲의학과 한의학을 두루 경험했다. 진료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측면은?
의학과 한의학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어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좋은 치료법'을 공유하는 것이 환자에게 좋은 치료 결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약으로 일시적인 완화 효과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반면 한의학은 질환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치료를 하려고 한다. 기가 넘치면 빼주고 모자라면 채워주는 방식이다.
몸 전체가 하나로 연결됐다고 보고 치료하기 때문에 위장을 치료하다가 건초염을 고치는 경우도 나온다.
현대의학이 하나의 질환에 대해 미시적으로 접근한다면 한의학은 거시적으로 접근한다. 이 둘을 병행해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최근 의사의 한의대 강의를 금지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의대와 한의대에서 강의를 나가고 있다. 주로 한의대에서는 한방내과를 강의하고 의대에서는 한의학의 개론을 강의한다.
양쪽 모두 강의를 나가기 때문에 누구의 편에 서서 옹호를 하기 보다는 제3자의 입장에서 학문의 이해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의대생을 상대로 "옛 것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강의는 하지 않는다.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이자고 말한다.
의대생에게 한의학을 강의를 할 때는 한의학적 기본 원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학적인 용어를 총 동원해 설명한다.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서다.
강의를 하다보면 특히 의대생들의 반응이 뜨겁다. 한의학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의대생들은 현대의학 강의가 일부 개설된 곳이 많아 접할 기회가 있지만 의대는 거의 한의학 강의가 전무한 형편이다.
현대의학이 만능이라고만 배운 사람들이 한의학을 폄훼하고 무시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의사의 눈으로 보면 한의학은 뜬 구름을 잡는 사이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과학적으로 이해와 설명이 안 된다고 해서 그 현상 자체의 체계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의 한의대 출강 금지를 결의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서는 의대와 한의대에 각각 한의학개론과 서양의학개론 등의 과목을 필수로 넣어 교육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이번 의료일원화 공청회에서 빚어진 감정 싸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의사와 한의사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학문 체계의 몰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학문 체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원화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교류가 확대되면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출강 금지 결의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사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이해한다.
맛보기로 의학 강의를 들은 한의사들이 "우리도 의학 강의를 들었으니 현대의료기기를 쓰겠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한의사들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의학은 과학적인 방법을 빌려 치료에 응용하는 학문이다. 한마디로 실용 학문이지 과학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의학은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 의료기기를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근거 창출 노력을 계속 해 왔다.
현대 의료기기의 원리가 치료 원리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현대의학=과학적 근거라는 도식이 창출된 것이다.
반면 한의학은 그런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대의학에 기반해 설계되고 개발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의학도 한의학적 원리와 근거 창출을 해야한다. 무턱대고 "우리도 의료인인데 의료기기를 왜 못쓰게 하냐"는 식으로 떼를 쓰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현대 의료기기를 못 쓰게 하는데 어떻게 근거를 창출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근거 창출은 일선 개원의의 몫이 아니다. 한의대나 한방병원이 선도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
의사들이 한의학을 사이비 학문이라고 폄훼하고 있지만 화만 낼 일이 아니다. 한의사들 역시 잘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한의사들이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무조건적인 한의학 옹호에 나서는 행위다. 동의보감에 나와있는 치료법이 모두 옳지는 않다. 어찌보면 황당한 치료법도 많은 게 사실이다. 사상체질도 마찬가지다.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 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통렬한 자기 반성 끝에 학문은 발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