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주당 80시간 근무 상한제가 시행되면 수련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표면상 근무시간이 줄어들었지만 '티 나지 않는 잡무'가 늘면서 오히려 수련시간만 잡아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대학병원 전공의는 22일 "수련시간과 당직이 눈에 띄게 줄기는 했지만 바쁜 것은 매한가지"라며 "오히려 근무를 할때보다 잡무는 더 늘어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수련, 당직에 쫓겨 넘어오지 않던 일들이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며 "과연 이게 더 바람직 한 것인지 의아스러운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일은 더 많아졌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 일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 번역이나 케이스 리포트 정리부터 교수들의 발표 자료 정리 등의 일을 도맡게 된 것이다.
이 전공의는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다 보니 교수들도 전공의들이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거리낌 없이 일을 맡기고 있다"며 "예전에는 워낙 수술방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나마 배려라도 해줬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떠맡을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문제의 발단은 또 다른 곳에도 있다. 전공의들의 일이 줄면서 임상강사, 펠로우들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전공의들이 해왔던 당직 등의 업무들이 펠로우들에게 돌아가면서 반대 급부로 그들이 맡았던 근무 외 의국 업무들이 전공의들에게 떨어진 셈이다.
B대학병원 치프 전공의는 "예전에 펠로우 선배들이 맡았던 일들이 서서히 나에게 내려오고 있다"며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4년차인 나로서는 근무시간도 늘어나고 일도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당직을 서면 임상 경험이라도 늘지 이건 서류에 파묻혀 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왜 하필 내가 치프일때 이러한 제도가 시행됐는지 정말이지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수련병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근무시간 조정은 가능하지만 의국 내 업무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A대병원 교육수련부장은 "당직과 근무시간 등은 당연히 병원에서 조정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의국 내 업무까지 관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또한 논문 자료 수집 등은 교수와 전공의간의 관계인데 문제가 발생한다면 몰라도 이를 통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