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가 의료계 총파업으로 인해 부과받은 공정거래의원회의 과징금 5억원을 비상대책위원회의 투쟁 기금에서 차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을 조짐이다.
의협은 과징금을 납부하고 향후 소송으로 반환 받을 수 있는 만큼 우선 기금을 전용해 급한 불을 끄자는 입장인 반면 비대위는 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쟁 기금을 빼 가는 것은 투쟁 동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가하고 있다.
17일 의협은 상임이사회를 열고 지난 3월 10일 집단휴진을 주도한 의협에 대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5억원을 납부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의협은 집단휴진이 원격진료 저지, 의료영리화 반대 그리고 건보제도 개선을 위한 의사들의 정당한 행위였기 때문에 공정위 처분은 부당하다며 과징금 납부 대신 소송을 통해 휴진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날 상임이사회에서는 19일까지 과징금 미납시 매달 8.5%의 가산금이 부과된다는 점에서 과징금을 부득이 납부하고 차후 소송을 통해 과징금을 환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협 관계자는 "한의사들이 집단 휴진을 했을 때는 과징금 등 처분 조치가 없었는데 의협에게만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것은 탄압에 해당한다"면서 "부당하게 과징금이 부과됐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가산금의 문제가 있어 실리를 찾는 방향으로 의견을 정리했다"고 전했다.
그는 "공정위의 행정처분 및 형사고발에 대한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고 소송에서 승소하면 과징금을 도로 환수받을 수 있다"면서 "과징금의 납부 결정은 이런 전략적인 대응의 일환으로 알아달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과징금도 투쟁의 일환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투쟁 기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결코 전용이나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비대위의 활동을 집행부가 막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비대위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의협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과징금을 의료정책연구소 예산에서 차용해 납부하고 이를 향후 2014년 투쟁 기금에서 보전하기로 한 까닭에 실질적으로 투쟁 전선에 나설 비대위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않게 됐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이번 집행부의 결정이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비대위의 투쟁 동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상임위에서는 이철호 비대위 공동위원장이 집행부의 의결 사항에 불만을 표출하며 공동위원장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이철호 위원장은 "과징금 5억원을 투쟁기금에서 갚기로 결정한 것에 김근모 위원과 함께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중과부적이었다"면서 "모 전문위원은 복지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강행에 비대위의 대응이 부족하다며 비대위를 폄하하는 발언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집행부의 의결 사안에 대한 비대위의 거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모 비대위원은 "비대위는 대의원회에서 구성한 것이고 비대위 특별기금 역시 대의원회에서 의결한 사안이다"면서 "임총을 열지않고 집행부가 단독으로 특별기금을 전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비대위가 특별기금 전용에 동의한다고 해도 감사시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비대위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없다"면서 "특별기금의 사용은 전적으로 비대위의 몫인데 이를 상임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여부도 감사를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협이 투쟁을 목전에 두고 과징금을 내겠다고 꼬리를 내린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면서 "비대위가 투쟁을 하는데 있어 예산이 필요한게 자명한데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를 빼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의협이 과징금을 내겠다고 하면 회원들의 휴진 투쟁이 불법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면서 "투쟁 동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