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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험과 결탁한 공권력…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

박양명
발행날짜: 2014-09-26 05:55:55

경찰·보험사에 수술실 습격 당한 A원장 "의사도 궁지에 몰리면 할 수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의 A이비인후과의원 본관과 별관에 갑자기 20여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A의원이 수술을 하지도 않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다는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한명의 반장을 중심으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며 A의원을 휘저었다. "야! 원장 이리로 와봐"라는 고압적인 말도 뒤따랐다.

당시 A의원 안 모 원장은 비중격만곡증 환자를 수면마취한 후 수술을 하고 있었다. 압수 수색을 나온 이들은 수술실에까지 무작정 들어왔다. 수술 현장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사진을 찍으며 마약보관 장소, 마취대장, 소독여부 등에 대한 질문을 했다. 스테이플러, 클립 등의 사무용품을 요구하기도 했다.

A의원 CCTV에 촬영된 압수 수색 모습.
안 원장은 참아야 했다. 반발을 하면 "공무집행 방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청결이 생명인 수술실에서 경찰들은 구둣발로 8분을 머물렀고, 그동안 환자는 방치돼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안 원장이 '경찰'인줄로만 철썩같이 믿고 있던 그들 중 대다수는 경찰이 아닌 민간보험사와 건강보험공단 직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 원장의 사연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이 소식을 접한 의료계는 공분했다.

전국의사총연합회와 대한의원협회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며 경찰과 민간보험사의 결탁을 비판했다. 검찰 고발까지도 검토하고 있다며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도 사실관계 파악과 함께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디칼타임즈는 25일 안 원장을 직접 만나 공권력에 맞서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안 원장은 "수면마취는 마취 전문의가 없이 집도의가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위험 때문에 환자가 방치돼 있었던 8분의 시간이 엄청나게 불안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가 한 달 전 이야기를 이제와서 꺼내놓게 된 이유는 뭘까.

"1년 반 전 민간보험사 직원이라는 한 여성이 병원을 찾아와서 수술 환자 소견서 등 무리한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료를 준비해 절차에 따라 1주일 안에 보낸다는 병원 직원과 보험사 직원이 언성을 높이며 실랑이를 벌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직원이 경찰이라며 압수 수색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민간보험사 직원이 경찰과 함께 압수수색을 하러 온 것. 보험사 직원이라는 소개 대신 경찰, 건강보험공단 직원 등의 일관되지 않는 소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압수수색을 나온 사람들이 민간보험사 및 건강보험공단 직원이면서 경찰이라고 사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경찰서 측은 "압수수색 당시 경찰관 6명, 건보공단 직원 및 금융감독위원회 파견 보험사직원 등 4명이 참여했다. 이들을 경찰관이라고 소개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안 원장은 "서초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조직도에는 총 11명이 나와 있다. 압수 수색에는 22명이 왔다. 원장 자택 압수 수색까지 더하면 25명이 투입됐다. 분명 전부 경찰이라고 했는데 나머지 10여명은 경찰이 아니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사보험사가 경찰과 금융감독원을 이용하는 행태였다. 너무 화가 났다.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A의원 전경
안 원장이 이렇게 자신있게 경찰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자신감은 그의 왼쪽 가슴팍에 꽂혀 있는 보이스볼펜(녹음 볼펜) 이었다.

녹음파일에서는 수면마취에 들어간 환자의 호흡 체크를 위해 돌아가는 심장박동기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문을 여닫는 소리, 안 원장과 압수수색팀의 대화 소리 등이 모두 들어있었다.

안 원장은 2010년 코 수술을 받은 환자의 막무가내식 난동에 질려 녹음기를 사용하게 됐다.

당시 환자는 수술 결과는 만족하지만 의사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병원에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누웠다. 수술비를 모두 돌려주고 나서야 일이 해결됐다.

그는 "의사도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병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라고 털어놨다.

안 원장은 경찰이 조사하고 있는 허위진단서 발급 보험사기 부분에 대해서도 떳떳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1년 비중격만곡증 수술 후 민간보험사에 치료목적의 성형수술이라고 쓴 진단서 발행률이 8%에 불과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2012년에는 13%, 작년에는 25%까지 올라갔고 보험사의 타겟이 된 것 같다"며 "보험사기 의혹을 제기한 것도 민간보험사"라고 밝혔다.

이어 "잘못한 게 있으면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학회 등에 평가를 받을 준비가 돼 있다. 보험사에 근무하는 간호사나 보험사와 유착된 기관, 연구소의 평가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안 원장은 대한안명성형재건학회에 비중격만곡증 교정수술과 외비성형수술이 치료목적이 성형수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의했고 학회는 긍정의 답을 보내왔다.

안 원장은 "현재는 고소 당사자가 수사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대로 가면 민간보험사의 시나리오대로 꼼짝없이 범법자가 될 수 있다. 보험사기 부분이 부각돼 동료 의사들에게도 비윤리적이라며 매도당할지도 모를 현실이 가장 두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비중격만곡증 수술이 한국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는 10년 정도 됐다. 꾸준히 계속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해왔고, 이제는 3차 병원에서 의뢰가 올 정도"라면서 "역사가 짧은 수술을 민간보험사가 비과학적으로 평가해 결과를 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안 원장은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휩쓸고 간 이후 8월에는 수술을 한 건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압수 수색 후 상당히 위축됐다. 수술이 부담스러워 하지 못하고 있다. 수술 진단서를 요청하는 환자가 있으면 먼저 거절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안 원장은 경찰과 민간보험회사의 유착에 대해 검찰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의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은 공권력이 협조를 요청하면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민간보험사와 경찰이 교묘히 이용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협박, 공무원 자격 사칭, 의료법 위반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압수수색 당시 수술을 받던 환자도 실제로 회복 속도가 더디다. 당시 충격 때문에 기자회견을 준비중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안 원장은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심경을 표현했다.

"너무 억울합니다. 보험회사 직원에게 평가를 받을바에는 부패한 공권력과 싸워보려고 합니다. 의사도 궁지에 몰리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