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심장질환자만 중증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나? 중증도 평가 기준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대학병원의 역할은 임상진료 이외에도 다양하다. 중증도만으로 2차, 3차 의료기관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암, 심장질환 이외 중중도가 낮은 진료를 하는 교수들의 하소연이다.
15일 병원계 따르면 최근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을 위해 각 상급종합병원들이 중증도 높이기에 혈안인 가운데 중증도가 낮은 질환을 다루는 진료과 교수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따르면 중증질환자의 입원비율이 전체 입원환자의 17% 이상, 단순질환은 16%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도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 특히 현재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아슬아슬한 의료기관에겐 중증도를 끌어올리는 게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중증도가 낮은 질환을 다루는 교수들이 소외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A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모 교수는 "진료 공간도 인력도 모두 줄었다"고 토로했다.
병원 측이 류마티스내과 외래 진료실과 간호인력을 줄이고 암, 심장질환 등 중증도 높은 진료과로 몰아줬기 때문이다.
해당 교수는 "루푸스는 마땅한 치료약이 없는 희귀난치성질환임에도 정부가 정한 중증질환 기준에 따라 중증질환으로 구분이 안되 홀대를 받고 있다"며 "정부의 중증질환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증도가 낮더라도 질환의 정도에 따라 암, 심장질환자 보다 더 고통스럽고 치료가 어려울 수 있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B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도 "수술실이 암, 심장질환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중증도 높은 입원환자 비중을 채우기 위해 암, 심장 등 수술환자의 수술을 우선적으로 배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브랜치 병원을 둔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도를 높이기 위해 중증도 높은 수술을 한쪽으로 몰아주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대학병원 교수는 "얼마 전 브랜치 병원에서 암 수술을 하는 의료진을 본원으로 발령을 냈다"며 "암 수술을 하는 의료진을 한명이라도 더 확보해 병원의 중증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무리한 의료진 이동으로 브랜치 병원에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중증도를 높이는 것에만 혈안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문제는 교수입장에서 병원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3차병원에서 2차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모 교수는 "교수들 입장에서도 병원이 3차에서 2차로 추락하는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씁쓸하지만 병원 측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수 역시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의료 현장이 왜곡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