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수가 적어서 빠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우수한 병원일까. 환자가 몰려서 대기를 해서라도 진료받는 의료기관이 우수한 병원일까.
이것이 현재 응급의료기관평가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지난 6일 국립대병원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국립대병원 응급의료평가 등급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전북대병원, 충북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상당수가 2년 전 대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2012년 상위 평가를 받았던 서울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2014년 평가에서 각각 하위, 중위로 추락했다.
심지어 지난 2012년 하위평가를 받은 전북대병원은 미충족 판정을 받았고 충북대병원도 중위에서 하위로 뚝 떨어졌다.
이에 앞서 열린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도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빅5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 120곳 중 각각 104위, 105위, 108위, 111위를 차지하며 굴욕을 맛봐야 했다.
병원 규모 및 시설, 인력 측면에서 두루 우수한 평가를 받는 이들 의료기관은 도대체 왜 이런 성적을 받은 것일까.
원인은 응급실 과밀화에 있었다.
응급의학과 의료진 "환자 수 적으면 최우수 병원이냐"
작년부터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적극 도입한 일명 '응급실 과밀화 지수'지표.
다시 말해 '응급실 병상 포화지수'와 '중증응급환자의 응급실 재실시간'을 지표로 만들어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적용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통상 빅5병원이라고 인정받는 의료기관 대부분이 최하위 평가를 받은 것.
당장 일선 의료기관 의료진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매일 밀려드는 환자 속에서 근근이 버티며 진료를 하고 있는데 환자가 과밀화가 높다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응급의료기관 평가지표는 시설 및 인력, 장비 등 다양한 항목이 있지만 응급실 과밀화 관련 비중이 높아 결국 환자의 응급실 재실시간 및 병상포화지수가 평가 결과를 좌우한다.
익명을 요구한 빅5병원 한 의료진은 "우리 병원도 병상포화지수 및 중증응급환자 재실시간 분야에거 각각 10점 만점에 4점을 받았다"며 "이는 다른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응급실 과밀화 지표가 도입되면서 일선 권역별응급의료센터 역할을 하는 의료기관에선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2차병원은 중증응급환자를 3시간 내로 3차병원에 전원하면 평가점수가 올라가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받다보니 과밀화가 생길 수 없다"며 "결국 평가에서 하위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환자를 전원할 때에는 해당 병원의 상황을 파악해야한다"며 "중앙응급의료센터 측에서도 시스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의료현실 한계 알지만 갈길 맞다"
응급실 과밀화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앞으로도 이는 계속해서 권역응급의료센터 즉, 대형 대학병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의료 현장의 문제제기와는 상반되게 정부는 현재 평가방향을 바꿀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단계 더 강화해 '응급실 과밀화' 별도 지표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한 관계자는 "내년도 새로운 평가지표를 도입할 예정"이라며 "의료계 특히 응급의학과에서 불만이 높은 것은 알고 있지만 응급실에서 중증응급환자의 재원시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이 부분은 별도 지표를 마련해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빅5병원 의료진이 해당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을 두고 불쾌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거듭 말했다.
이는 의료진의 역량이나 의학기술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각 의료기관 응급실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평가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응급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목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물론 현재 의료시스템 내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평가 방향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각 의료기관의 운영 방침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최근 추진 중인 권역응급의료센터 수가인상과 맞물려 병원 내의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