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임수흠 대의원회 의장의 선거 무효 논란이 감사단 내부 의견 충돌뿐 아니라 대의원회 운영위원회까지 의견이 엇갈리는 등 후폭풍을 낳고 있다.
특히 대의원 운영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 관장하는 대의원회 운영위원회가 "동점자의 경우 연장자가 당선자가 된다"는 운영위 규정을 스스로 부인하면서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비판까지 거세지고 있다.
21일 의협은 상임이사회를 개최하고 '대의원회 의장 선출 관련 감사단 긴급보고 접수의 건'을 상정, 논의했다.
앞서 4월 26일 개최된 제67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벌어진 제28대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 선거는 유례없는 초박빙 승부를 연출한 바 있다.
1차 투표에서 임수흠-이창 후보가 1표차를 나타낸 데 이어 2차 결선 투표에서 동수가 나오는 초유의 결과가 나왔지만, 결국 3차 투표에서 임 후보는 이창 후보를 2표차(111표 대 109표)로 따돌리고 신승했다.
문제는 메디칼타임즈가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규정을 입수, 살펴본 결과 의장 후보의 동점자 발생 때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을 확인하면서 불거졌다.
운영위 제79조(표결방법)은 "대의원총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선거는 투표 결과 당선자가 없을 때 최고득표자와 차점자에 대해 결선투표를 진행, 다수 득표자를 당선자로 하지만 득표수가 같을 때는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수흠 의장은 1955년생으로 이 규정에 따르면 1954년생인 이창 후보가 당선자가 됐어야 한다.
의협에 노환규 전 회장 사진이 없는 이유는? 제 얼굴에 침뱉은 운영위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운영위원회 규정은 이미 2013년 7월 3일 협회 홈페이지 대의원회 공지사항에 공지된 내용이다.
문제는 의장 선출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해야 할 운영위가 스스로 해당 내용을 포함하는 운영위 규정이 총회에 보고된 바 없다고 규정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
운영위 관계자는 "해당 규정은 개정된 이후 총회에 보고된 적이 없어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변영우 의장이 동점자에 대해 대의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3차 투표를 진행한 것은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다수의 의료계 관계자들은 운영위가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운영위 규정은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 대의원회 회무뿐 아니라 노환규 전 회장의 불신임에도 적용됐던 사안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2014년 4월 19일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노환규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을 상정한 바 있다.
노환규 전 회장은 최후 변론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대의원회는 '개정된 운영위 규정'을 들어 변론을 막았다.
당시 운영위 규정 제102조(불신임 대상자의 회의장 출석 불허 및 기타)는 불신임 발의 대상자는 회의장에 나올 수 없으며, 신상발언 등 불신임 안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문건을 우편, 전자우편, 모사전송 등의 방법으로 대의원들에게 보내거나 배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 역시 개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운영위가 노환규 전 회장의 불신임과 관련해서는 '개정된 운영위 규정'을 들어 불신임 발의 대상자는 회의장에 나올 수 없다고 했지만, 이번 의장 선거 무효 논란에서는 해당 규정이 총회에 보고된 적 없다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또 있다. 현재 3층 대회의실에는 전임 의협 회장의 사진이 게시돼 있다. 역대 의협 회장 사진 중 마지막 회장의 얼굴은 노환규 전 회장이 아닌 경만호 전 회장이다.
현 추무진 회장을 제외하고 제37대 노환규 전 회장의 사진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역시 개정된 운영위 규정에 포함된 "불신임을 받은 자에게는 전임자로서의 모든 예우를 하지 아니한다"는 사항을 적용해 벌어진 일이다.
방상혁, 임병석 이사의 불신임 이후 퇴직금을 미지급한 일 역시 "불신임을 받은 자에게는 퇴직금이 지급되지 아니한다"는 개정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내 책임 없다" 집행부·의장·운영위 모두 꿀먹은 벙어리
이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민법에도 '이미 표명한 자기의 언행에 대해 이와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금반언의 원칙이 있다"며 "이제 와서 운영위가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5기 운영위에서 만든 개정된 운영위 규정이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이를 바로잡았어야 했다"며 "개정 규정을 지금까지 적용해 놓고 문제가 터지자 6기 운영위들은 이를 그저 5기의 문제로 선을 긋고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의 장본인인 변영우 의장은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 수 차례 접촉에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당시 동점자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재 투표를 하겠다는 변영우 의장의 제안에 이의를 제기했어야 할 대의원, 운영위원들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면 운영위는 감사단이 정식 공문을 접수해야만 이번 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겠다는 계획. 키를 쥐고 있는 감사단 내부에서도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21일 열린 의협 상임이사회에서는 정능수 감사와 김세헌 감사가 선거 무효 건을 두고 맞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 관계자는 "김세헌 감사는 운영위가 이미 개정 규정을 적용해 회무를 진행해온 마당에 개정 규정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며 "반면 정능수 감사는 개정 규정이 효력이 없고 감사의 긴급 보고 사항으로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능수 감사는 선거관리 규정에는 선거 관련 문제는 14일 이내에 이의제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용했다"며 "6개월 지났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전 의협 감사는 "이건 선거의 절차적 문제가 아닐 뿐더러 선거관리 규정은 회장 선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선거관리 규정을 들어 14일 이내 이의제기 하라는 말이 안 된다"며 "이건 변영우 의장의 진행 미숙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어쨌든 변 의장이 사과 발표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행부로서도 곤란한 입장에 빠졌다. 오는 24일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의 식순에 임수흠 의장의 격려사를 넣어지만 자격 논란이 불거진 마당에 부적절하다는 언급마저 나오고 있다.
이날 의협 집행부는 상임이사회를 통해 선거 무효 논란을 외부에 법률 자문을 받기로 의결했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선거관리 규정이 상위 개념인지, 운영위 규정이 상위인지 법률 자문을 받겠다"며 "또 개정된 운영위 규정이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도 자문 범위에 넣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