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는 늘 병원 경영진의 눈치를 봐야했다. 응급실은 늘 밑빠진 독에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응급의료수가 신설 등 제도 변화로 응급실이 변하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정부의 응급실 과밀화 대책 중 일부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응급실 과밀화 해소? 좋은 얘기다. 하지만 당장 응급실로 온 말기암 환자를 어디로 보내하나 고민스럽다."
빅5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고백이다.
환자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언제 어떤 응급상황이 벌어질 지 모르는 말기암 환자를 커버할 수 있는 2차병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기암 환자는 경증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중증응급환자로 바뀔 지 모르는 환자라는 점에서 단순 경증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제도 취지 공감하지만, 인프라 갖춰졌는지 의문"
이는 정부가 응급실 과밀화 해소 즉, 중증응급환자가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대형병원 응급실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말기암 환자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응급의료 관련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 및 급여 상대가치점수'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중증응급환자 또는 중증응급 의심환자는 응급실 내원 후 24시간 이내 행위를 실시하는 경우 50%가 가산된다.
반면, 24시간을 초과해 체류하는 환자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 넘으면 권역 및 지역응급센터 및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도록 했다.
다시 말해 대형병원은 응급실로 내원한 말기암 환자를 24시간 이내에 입원 혹은 전원 조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모 대형병원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동이 풀 가동 중인 상황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말기암 환자를 위해 병상을 비워둘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2차병원으로 보내자니 환자도 해당 병원에서도 나서지 않아 그 또한 어렵다"며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려면 이 문제가 선결돼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응급실 과밀화 대책의 허점이다.
응급의료수가를 신설, 응급실에서 경증환자를 빼고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진료를 하도록 방향을 전환했지만 당장 경증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조차 마련해두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일선 대형병원 응급실 의료진들 사이에선 "제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응급실로 온 말기암 환자 등 만성중증환자를 어디로 보낼 지 답이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 보상 구조 만들었다…이제는 병원이 투자할 차례"
제도 변화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업무가 크게 늘어난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도 새어나오고 있다.
응급실 전문의 수가 가산 등 제도가 바뀜에 따라 응급실에 돈이 도는 구조가 만들어 진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당장 의료진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려니 버겁다는 지적이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제도 취지는 200% 공감한다. 그런데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하지 않느냐"면서 "응급의학과 전 스텝이 응급실에 붙어 있어야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제도 취지가 응급실에 의사, 간호사 인력을 확충하라는 것"이라며 "신설한 응급의료수가도 기존에 잘 안되고 있는 부분을 개선하면 가산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즉, 병원이 응급실에 투자를 하도록 제도적으로 동기를 부여했다는 얘기다. 응급실에 돈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든 만큼 병원 경영진의 투자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의료인력으로 바뀐 제도를 이행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병원이 전문의 및 간호사를 충원해야한다. 또 그렇게 하고자 수가 가산을 신설한 것"이라고 말했다.